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사흠(士欽). 홍언(洪琂)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기서(洪箕叙)이고, 아버지는 홍인(洪潾)이며, 민회(閔晦)의 딸이다.
1725년(영조 1)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주서(注書)에 초임되었으며, 그 뒤 지평·정언을 역임하였다. 1737년 정언으로 있으면서 임금이 전형을 거치지 않고 윤양래(尹陽來)를 호조판서에 임명하자 체자를 청하여 물러나게 했다. 또한 몸가짐이 비굴하거나 권문에 친압한 자는 대간으로 뽑지말 것을 상소하였다.
1741년 대사헌에 올랐으나 소명(召命)을 어기고 계복(啓覆)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해현감(南海縣監)으로 폄체(貶遞: 성적이 좋지 않은 관원을 벼슬을 깎아 관직을 교체시킴.)되었다. 다음해 돌아와 지평·장령·헌납을 지내다가 1745년 묘향(廟享)의 대축(大祝)에 불참한 죄로 유배되었으나 곧 풀려났다. 1747년 헌납으로 재임명되고 사간·집의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