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9년(숙종 25)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박양무(朴楊茂)의 절의와 도학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박계은(朴繼恩)·박맹문(朴孟文)·박란(朴鸞)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다.
그 뒤 1869년(고종 6)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서당(書堂)으로 보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건물로는 7칸의 정당(正堂), 3칸의 퇴랑(退廊), 그 밖에 고사(庫舍)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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