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黃喜)
황희는 조선전기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363년(공민왕 12)에 태어나 1452년(문종 2)에 사망했다. 고려가 멸망하자 은거하다가 태조의 적극적인 출사요청에 응하여 관료가 되었다. 태종과 세종 재위기까지 관직생활을 하며 국방 강화, 예법 정비, 외교문물제도의 정비, 농업 진흥, 집현전을 중심으로 한 문물 진흥의 지휘감독 등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세종 대에 영의정부사에 오른 뒤 18년 동안 국정을 총괄하면서 세종 대의 성세를 이룩한 인물로, 조선왕조 전체를 통틀어 가장 명망 있는 재상으로 칭송되었다.시대적배경」(이숭녕,『세종대왕의 학문과 사상』, 아세아문화사, 1981) - 「만인의 재상」(이강로,『한국의 인간상』, 신구문화사, 1965) - 「청백리의 귀감 황희」(신학균,『인물한국사』, 박우사, 1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