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산학에서는 창조적 노력보다는 경전시(經典視)된 산서(算書)를 그대로 기억하는 일이 중요했으므로 가결의 형식을 중요하게 여겼다.
가결이 가장 유행한 시기가 중국에서 수학이 가장 침체됐던 명나라 때 였음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 1450년에 발간된 오경(吳敬)의 『구장산법비류대전(九章算法比類大全)』에는 「난법가(難法歌)」가 있으며, 다음과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 白米三石五斗, 芝麻換得三石, 芝麻五斗五升, 知八斗小麥, 換己却有小麥換米, 九石六斗無移 知公能算間 端的不合人笑儞(백미삼석오두, 지마환득삼석, 지마오두오승, 지팔두소맥,환기각유소맥환미, 구석육두무이 지공능산간 단적불합인소이). ……(右西江月)
그 뜻은 백미 석 섬 닷 말은 지마(깨) 석 섬으로, 지마 닷 말 닷 되는 소맥(밀) 여덟 말로 환산할 수 있다. 소맥 아홉 섬 여섯 말을 백미로 바꾸면 얼마냐는 문제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서강월의 가락이다. 즉, 수학 문제를 노래처럼 불렀던 것을 알 수 있다. 노랫가락으로 수학을 다룬 것은 『구장산법비류대전』이 최초의 것이다.
『산법통종(算法統宗)』은 이 책의 영향을 크게 받아 구결, 가결을 대폭 채용하였다. 특히, 수학의 학습요령, 주의할 점 등을 한시의 형식으로 기술하였고, 주판의 계산법에 관해서는 구귀가(九歸歌)라 하여 그 내용을 모두 시 형식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중국, 일본에서 출판됨과 더불어 널리 보급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구수략(九數略)』을 비롯하여 수많은 산서가 가결의 형식을 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