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조선에 대한 외교권을 위임받은 대마도주(對馬島主) 소오씨가(宗氏家)와 짜고 양국간의 외교문서인 국서를 위조하기도 하고 무역에 농간을 부리기도 하였다.
1807년(순조 7) 조선정부에서는 좌의정 이시수(李時秀)를 대마도에 보내어 역관들의 부정사례를 조사하고 간역배들을 색출하여 처벌하였으나, 그들의 횡포는 그치지 않았다. 1839년(현종 5)에 이의교(李宜敎)·박진영(朴晉營) 등 왜역들이 서계(書契)를 조작하여 조정을 우롱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동래부사 성수묵(成遂默)이 그들을 체포하여 조정에 보고하였다.
정부에서는 이 문제의 처리로 의견이 분분하였으나, 간역당률(奸譯當律)을 제정하여 당사자들을 엄벌에 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왜역들의 대마도주와 결탁한 농간은 1869년(고종 6) 일본정부가 조선에 대한 통교무역권을 대마도주로부터 회수할 때까지 계속 자행되어 근절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