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지정(頭支定)·집수(執穗)·간수(看穗)·답품(踏品)·집조(執租)라고도 하였다.
지주를 대신하여 작황조사에 나선 사람을 간평원(看坪員)·간평인·간추인(看秋人) 혹은 집조관이라 하였다. 또, 이러한 방법으로 소작료를 부과하던 방법을 집조법(執租法)이라 하였는데 경상도와 전라도지역에서 많이 행해지고 있었다.
간평은 조선시대부터 1950년 농지개혁으로 소작제가 사라질 때까지 지속되었으나 민족항일기에 특히 성행하였다. 이는 주로 벼농사의 경우에 적용되었는데, 벼를 세워둔 채로 이삭의 수를 헤아려 예상수확량을 추정하고 추정치의 50∼55%를 소작료로 부과하였다.
그러나 실제수확량은 추정치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집조법에 의한 소작료는 사실상 60%가 넘기도 하였다. 이러한 까닭으로 간평원과 소작인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는 일이 잦았다.
간평은 소작료 결정이 주목적이었으나 지주측의 농장관리실태 파악 및 소작인의 경작태도를 관찰할 목적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주가 멀리 있을 경우에는 마름[舍音]이 이 일을 대신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