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6판. 148면. 1958년 춘조사(春潮社)에서 간행하였다. 작자의 후기(後記)가 있고, 총 30편의 작품을 7부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1부에는 「바람」·「음악」·「기도」·「한 모금의 물」·「강」·「사계 四季」 등 16편, 2부에 연작시 「갈매기 소묘」, 3부에 연작시 「생성의 꽃」, 4부에 연작시 「생명」, 5부에 연작시 「다섯 편의 소네트」, 6부에 장시 「원죄(原罪)의 거리」, 그리고 7부에는 ‘구시첩(舊詩帖)’이라는 표제로 제1시집 『초롱불』에 수록하였던 초기작품 9편을 재수록하고 있다.
이 시집은 1940년『문장(文章)』지의 추천을 마치고, 첫 시집 『초롱불』을 간행한 이후 18년 만에 간행한 것이다. 일본의 조선어 말살정책과 공산주의의 억압에 대하여 침묵으로 저항하던 작가는 1951년 1·4후퇴 때 월남한 뒤부터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재개하였다.
따라서, 이 『갈매기소묘』는 그의 시작 과정에서 제2기에 속하는 시편들을 묶은 것인데, 초기시에 나타나던 서정성은 어느덧 사라지고, 좀더 주지주의적인 경향이 뚜렷해진 것이 이 시기의 특징이다.
조형적이면서도 즉물적(卽物的)인 심상(心像)과 이와 같은 심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형태상의 실험이 함께 나타난다. 작가에게는 모색과 실험의 기간인 이 시기의 시는 대체로 두가지 뚜렷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나는 「생성의 꽃」·「생명」·「다섯 편의 소네트」 등 연작형태의 시를 통하여 보여주는 객관적이고 즉물적인 심상의 조형이다. 이 계열의 시편들은 모두 섬세하고 날카로운 관찰을 바탕으로, 한 순간의 풍경이나 정경을 심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한편 한편의 시는 함축성이 결여된 평면적인 심상의 제시처럼 보이지만, 이것들이 고리처럼 연결되어 연작을 이룰 때 마치 몽타주의 수법처럼 입체감과 깊이가 드러나도록 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다른 한 계열은 「원죄의 거리」·「할머니 꽃씨를 받으시다」·「비가(悲歌)」와 같이 전쟁의 체험을 노래한 시편들이다.
이 시편들은 좀더 직설적이고 영탄적인 어조로 전쟁과 피난생활의 비극을 노래하고 있다. 즉 여기서는 심상보다도 사실적인 내용이 더욱 두드러지게 시의 전면에 노출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집을 대표할 수 있는 시적 성과는 역시 이 두 계열을 결합시킨 연작시 「갈매기 소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실향민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과 불안정한 삶의 갈등, 두고 온 고향에 대한 향수 등을 갈매기의 날개짓에 투영시켜 형상화하고 있는 이 연작시는 간결한 조사(措辭), 머뭇거리지 아니하고 바로 헤아려 결정한 심상 등 기법면에서도 잘 다듬어진 빼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