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백석(白石)의 본명은 백기행(白夔行) 1936년 자가본(自家本)으로 발행했으며, 총 33편의 시를 4부로 나누어 수록했다.
1부 ‘얼럭소 새끼의 영각’에 「고야(古夜)」·「가즈랑집」·「여우난 곬 족(族)」·「모닥불」 등 6편, 2부 ‘돌덜구의 물’에 「성외(城外)」·「초동일(初冬日)」·「주막」·「적경(寂境)」 등 9편, 3부 ‘노루’에 「산비」·「쓸쓸한 길」·「머루밤」·「노루」 등 9편이 실려 있다.
4부 ‘국수당 너머’에 「절간의 소이야기」·「오금덩이라는 곳」·「정주성(定州城)」·「통영(統營)」 등 9편이 각각 실려 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편들의 특징으로 먼저 지적될 수 있는 것은 작가가 자신의 고향인 평안북도의 사투리를 그대로 시어(詩語)로 활용해 향토적·민속적 세계를 시의 바탕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시집에서 시인이 즐겨 노래하고 있는 고향의 전설은 누구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옮겨놓은 것 같은 형식을 흔히 취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스랑고개, 여우난 곬, 국수당’ 같은 구체적인 지명과, ‘가즈랑집 할머니’, ‘진할아버지’, ‘토산(土山) 고무(고모)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동(承童)이’, ‘정문(旌門)집 간난이’ 등 구체적인 인물들을 등장시킴으로써 단순한 회상의 차원을 넘어 고향마을의 역사와 그들의 순박하면서도 어두운 삶의 현장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사슴』의 시편들은 근본적으로 회상의 시들이다. 그것을 그리는 방법으로 현재의 시점에서 돌이켜보는 추억이 아니라, 회상의 시공(時空) 자체를 직접적으로 형상화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 예로 「여우난 곬 족」·「가즈랑집」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작품 역시 어린 시절에 들었던 고향의 전설을 시화한 작품으로서 시세계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독자의 이해를 도외시한 채 고향의 사투리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리고 그 속에 살고 있는 어린 시절의 자아까지도 하나의 객관적인 대상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시가 고향에 대한 향수보다는 실제로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하나의 세계를 독자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시도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시세계의 핵심을 이루는 설화체와 서북 방언의 사용은 그의 특색인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다. 특정한 지역과 인물을 등장시켜 독자에게 들려주는 고향의 이야기는 사라져가는 전통과 민속의 세계를 가장 극명하게 재현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시적 긴장력의 이완이라는 결함을 지니기도 한다.
사투리의 사용 역시 시에서 향토적 정서를 표현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도 백석의 경우처럼 지나치게 사용하다보면 오히려 시의 전달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나 『사슴』은 일방적인 서구시의 도입과 추종으로 특징지어지던 시기에 지나친 서구 지향을 거부하면서 자아에 대한 주체적인 각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1920년대의 민요시와 비견되는 시사적(詩史的)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