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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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개념
민족정신 또는 전통 양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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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민족정신 또는 전통 양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문학.
내용

1920년대 중반부터 당시 문단을 휩쓸고 있던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계급·이념 지상주의에 맞서 대두되었다.

최남선(崔南善)·이광수(李光洙)·염상섭(廉想涉)·이병기(李秉岐)·정인보(鄭寅普)·조운(曺雲)·이은상(李殷相)·주요한(朱耀翰) 등 당시 한국문단의 중견작가들을 주축으로 하여 결속된 이 유파를 ‘국민문학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국민문학은 당시 신간회(新幹會)를 중심으로 파급되기 시작한 일제에 문화적인 예속을 거부하는 민족주의 운동의 문학적 반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당시의 민족주의와 계급주의는 일제로부터의 해방·광복이라는 동일한 궁극목표를 두고 실천 방법에 있어서 서로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으며, 국민문학과 프로문학(KAPF)의 관점의 차이는 이에서 비롯한다.

이 ‘국민문학’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조선문단(朝鮮文壇)』(1926.5.)에 실린 최남선의 논문 「조선국민문학으로서의 시조」에서이다.

국민문학 운동은 이 계열에 속하는 문학가들 자체의 자발적인 동기에서라기보다, 카프의 계급주의 문학 운동의 공세에 대처하기 위한 방어적 태세에서 형성되었다 하겠다. 이 점은 국민문학파의 인물들이 하나의 통일된 이념을 견지하지 못하고 제각기 상당한 차이를 드러낸다는 사실로서도 짐작된다.

구체적으로는 최남선·이광수 등으로 대표되는 민족주의 문학과 양주동(梁柱東)·염상섭의 절충주의 또는 절충파로 나눌 수 있다는 것도 바로 그러한 양상의 한 면모이다.

전자는 우리말과 글로써 민족의 생활과 정서, 그리고 민족정신을 표현한 것이 국민문학이라고 밝혔다. 즉, 계급을 초월하여 민족애를 고조시키고 민족사를 찬미하는 데 그 문학적 이상을 설정했던 것이다.

따라서, 국수주의적 복고사상과 관련되는 측면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그 주장에 있어서도 논리성·합리성보다는 심정적·신념적 측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그 반면에 후자는 당시의 문예 운동이 나아갈 목표를 국민문학의 건설에 두고, 계급주의문학이 카프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민문학의 한 시대적 요소인 것으로 보았다. 국민문학과 계급주의문학의 필연적 대립에 대해서는 견해의 차가 있었으나, 양자의 제휴와 타협을 촉구한 점에 있어서는 공통된다.

최남선은 “시조가 조선국토·조선인·조선심(朝鮮心)·조선운율을 통하여 표현된 필연적 양식”이라는 주장을 통하여, 자신이 표방한 국민문학의 개념이 시조와 같은 전통양식을 통한 민족주의정신의 표현이라는 민족주의적 복고사상임을 분명히 하였다. 유물사관을 배격하는 민족관의 정립을 위한 역사와 전통에의 관심은 필연적인 시대적 요청이었다.

전통을 살려나가면서 신문학을 극복, 지양하려는 노력이 이병기의 「시조란 무엇인고」와 염상섭의 「시조에 관하여」(1926), 조운의 「병인년과 시조」(1927) 등의 시조문학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베풀어졌으나, 국민문학이 내세우는 고전문학의 부흥은 시대적 격변기에 처한 조선인의 사상과 감정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김기진(金基鎭)의 「문화시평(文化時評)」(1927)에서 지적한 대로 현실을 좀더 충실하게 반영할 수 있을 정도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또한, 이들은 1926년 한글학회를 중심으로 한 민족항일기의 우리말 연구와 보급·정리를 위한 운동인 ‘가갸날’의 제정을 계기로 하여 조사의 곡용(曲用)과 어미의 활용(活用) 등을 시조 창작에 적용함으로써, 국민문학파의 언어에 대한 관심은 한국문학의 예술성을 높이는 데에 공헌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사용한 순수 국어와 고어 및 아어(雅語)는 시대에 따른 언어 체계의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국민문학을 전기로 삼아 근대화를 지향하기 위하여 전통을 비판하는 반봉건의식(反封建意識)은 독립 투쟁을 위한 전통 강조의 반제의식(反制意識)으로 옮아갔다.

특히, 국민문학에 있어서 문학의 예술성 및 독자성에 대한 자각은 김기진의 「내용과 표현」(1927)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내용보다는 표현에 역점을 두는 쪽으로 논의되었지만, 그것은 프로문학의 내용 또는 사상의 일방적인 목적의식에 대한 부정이었을 따름이지 문학의 형식 속에 내재하는 내용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염상섭의 「작금의 무산문학(無産文學)」(1927)에서와 같이 앞의 비판에 대한 반론을 통하여 문학적으로 굴절시킬 내용의 필요성을 전제했으므로, 한국문학에 대한 국민문학의 가장 올바른 방향제시였다고 말할 수 있다.

국민문학파의 작품 활동은 주로 시조 부흥 운동과 역사소설 창작에 치중되었으며, 계급주의 문학 쪽을 공격한 일련의 작품들과 농민소설 등 국민문학론에 입각한 창작이 있다.

국민문학 운동은 계급주의 문학 운동과의 논쟁이 펼쳐지는 과정에서 전개되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제의 대륙 침략이 본격화되고 파시즘 체제가 확립됨에 따른 일제의 본격적인 탄압에 의하여 카프가 해체되고, 카프의 중심인물들이 전향선언을 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계급주의 문학 쪽이 와해되어 국민문학 쪽도 투쟁의 대상을 잃게 되자, 그 시대적 의의는 퇴색하고 그 활동도 쇠퇴하였다.

참고문헌

『국민문학에 대한 고찰』(김용구, 서울대학교대학원 현대문학연구회, 1980)
『한국근대문학의 사적이해』(김용직, 삼영사, 1977)
『조선신문학사조사』현대편(백철, 백양당,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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