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후손인 박창도(朴昌道)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정연시(鄭然時)의 서문과 권말에 정직교(鄭直敎)의 발문이 있다.
8권 5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2에 시 178수, 부(賦) 2편, 권3·4에 소 2편, 계(啓) 31편, 전(箋) 2편, 장(狀) 2편, 책(策) 2편, 서(書) 3편, 명 2편, 제문 9편, 고유문 4편, 기 3편, 서(序) 4편, 권5·6에 잡저 7편, 권7·8에 부록으로 세계도·연보 각 1편, 녹훈교서(錄勳敎書)·사제문(賜祭文) 각 1편, 제문 19편, 만사 20수, 묘갈명·가장·통문(通文) 각 1편, 끝에 박여량의 손자인 박명진(朴鳴震)의 사암공실록(思庵公實錄) 등이 실려 있다.
소 가운데 「청참김수조대곤등(請斬金睟曺大坤等)」은 김수와 조대곤을 사형시키라는 상소문이다. 그 내용은 감사인 김수는 왜군의 침략으로 동래와 양산이 함락될 때에 구원하지 않고 도주했으며, 병사 조대곤은 왜적을 공격하지 않고 군사로 자기 신변만 호위하게 했으니,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 가운데 「청신기축원사제신(請伸己丑寃死諸臣)」은 1589년(선조 22) 기축옥사 때 억울하게 죽은 이발(李潑)·이길(李洁)·백유양(白惟讓)·정개청(鄭介淸) 등의 죄안(罪案)을 없애고 벼슬을 돌려주도록 건의한 상소문이다. 「청오현종사(請五賢從祀)」는 높은 학덕과 국가에 큰 공로가 있는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조광조(趙光祖)·이언적(李彦迪)·이황(李滉) 등 5현을 문묘에 배향시킬 것을 주장한 것이다.
「청물용여악(請勿用女樂)」은 왜란을 겪고 민생이 곤란을 당하고 있는 시기에 궁중에서 기생을 불러 잔치를 여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한 상소이다. 「청물허일본인개시(請勿許日本人開市)」는 임진왜란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고 일본에 대한 국민의 감정이 좋지 못할 때 간교한 일본인에게 시장을 열게 해서는 안 된다고 청한 내용이다.
「천령효열록(天嶺孝烈錄)」은 노진(盧禛)·강익(姜翼)·정수(鄭壽) 등 30명의 효와 절개를 기록하여 자손들에게 충효를 권장한 것이다. 그밖에 두류산의 경치를 구경하고 지은 「두류산일록(頭流山日錄)」과 관직에 있으면서 중요한 사실들을 기록한 「종사일기(從仕日記)」 등은 15·16세기의 국제정세 및 국내의 정치적·사회적 문제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