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주서(周瑞), 호는 외암(畏菴). 아버지는 권해도(權海度)이며, 어머니는 광산김씨로 김서구(金敍九)의 딸이다. 유치명(柳致明)의 문인이다.
1835년(헌종 1)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예부의 지색(枳塞)을 당하자 ‘선비가 할 일은 벼슬에 있지 않다.’ 하고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하였다.
권태시(權泰時)의 남경대(攬景臺)와 홍여하(洪汝河)의 몽학대(夢鶴臺)를 중수하는 데 참여하였고, 김대진(金岱鎭)·신필흠(申弼欽)·유치유(柳致遊)와 함께 이휘일(李徽逸)의 『홍범연의(洪範衍義)』를 교정하였으며, 이수영(李秀榮)과 함께 이유원(李猷遠)의 문집 간행에도 참여하였다.
그 뒤 고을 사람들의 추대로 김주교(金周敎)가 창설한 낙육재(樂育齋)에서 30여년 동안 후학을 가르치는 데 전념하였고, 『심경』·『근사록』·『주서절요』 등에 관하여 많은 연구를 하였다.
「태극동정설(太極動靜說)」·「심성설」·「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 등이 대표적인 명저로서, 「이기호발설」은 주자와 이황의 설을 절충하여 그의 견해를 피력한 것이다. 저서로는 『외암문집(畏菴文集)』 4권 2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