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백휴(伯休) 호는 능호(菱湖). 아버지는 강덕리(姜德利), 어머니는 김해김씨(金海金氏)김창렬(金昌烈)의 딸이며, 김려(金鑢) · 이우신(李友信)의 문인이다.
1824년(순조 24) 경학(經學)으로 천거되었고, 1828년에 다시 별천(別薦)되었으며, 1840년 안릉참봉(安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강상국이 부령향교(富寧鄕校) 장의(掌議: 성균관 유생들의 자치기구인 재회(齋會)의 임원 중 우두머리)로 있으면서 유림들과 함께 김제겸(金濟謙)의 사우(祠宇)를 청암(靑巖) 도곡(陶谷)에 창건할 것을 결정하였고, 또한 부령에 호환(虎患)이 심하자 군수인 조관석(趙寬錫)에게 호랑이 덫 설치를 요청, 몇 달 사이에 수십 마리를 잡아 호환을 없앴다.
그는 매우 가난하였지만 의(義)가 아닌 것은 취하지 아니하고 실학(實學)에 전념하니, 김여는 『근사록(近思錄)』을, 이우신은 『주자유서(朱子遺書)』, 「서도부(西都賦)」를 주면서 권면하였다. 저서로는 『능호집(菱湖集)』 1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