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1책. 석인본. 1936년 후손인 영복(永馥)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김홍락(金鴻洛)의 서문과 권말에 김병린(金柄璘)과 7세손 영린(永麟)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85수, 서(書) 9편, 서(序) 3편, 기 2편, 제문 3편, 잡저 1편, 권2는 부록으로 가장·행장·묘갈명·묘지명 각 1편, 향유청포장(鄕儒請褒狀)·도유청포장(道儒請褒狀)·유소(儒疏)·본관보장(本官報狀)·감사이은장문(監司李溵狀聞)·어사김종정복계(御史金鍾正覆啓) 각 1편, 회계(回啓) 3편, 초기(草記) 2편, 연계(筵啓) 1편, 비망기(備忘記)·분황고유문(焚黃告由文)·기양서원봉안문(沂陽書院奉安文)·상향문 각 1편, 곡단시차운(哭壇詩次韻) 5수, 분황운(焚黃韻) 43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곡단시」는 영조가 죽자 단을 모으고 조석으로 망곡(望哭)하며,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증직을 내려준 영조의 은혜에 감사를 표한 시이다. 「국담공거의일도강유시복차기운(菊潭公擧義日渡江有詩伏次其韻)」은 아버지가 창의하기 위하여 강을 건너며 시를 짓자 그가 차운한 것으로, 부자가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킬 것을 맹세한 시이다.
잡저 중 「정본쉬장(呈本倅狀)」은 황효창(黃孝昌)의 효행과 애국심을 칭찬하고 장려하기 위하여 군수에게 올린 것이다. 이밖에도 자기의 소신을 밝힌 「감은재기(感恩齋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