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東學)의 접주(接主)이다.
동학교조 최제우(崔濟愚)가 경상도 지방을 중심으로 포교를 시작한 이래, 그 교세가 점차 확장되어 1862년(철종 13)부터 접주제도를 두어 각 지역에 접소(接所)를 설치하는 등 동학교단을 조직할 때에 경주접소의 접주가 되어 포교에 종사하였다.
경주 지역은 교조 최제우의 고향이자 동학의 발원지라고도 할 수 있는 곳으로, 이곳에는 당시 이내겸(李乃謙)·백사길(白士吉)·강원보 세 사람의 접주가 있었다.
이 때 강원보의 접(接)에는 문벌이 높은 사람과 문장이 있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1863년 12월, 교조 최제우와 함께 선전관(宣傳官) 정운구(鄭運龜)에게 체포되어 이듬해 3월 다른 동학교도 12명과 함께 유배형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