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원

  • 역사
  • 제도
  • 대한제국기
근대 개항기 황실재산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궁내부산하 관청.
제도/관청
  • 설치 시기1905년
  • 폐지 시기1907년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상찬
  • 최종수정 2026년 03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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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근대 개항기 황실재산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궁내부산하 관청.

내용

1905년 3월에 설치되었다. 일제가 황실재산을 침탈하기 위해 내장원을 내장사와 경리원으로 분리, 독립시킬 때 설치되어 황실재산(世傳莊園의 관리, 收賭 · 礦業 · 蔘政)을 총괄하였다.

서무 · 삼정 · 지응(支應) · 종목(種牧) · 장원 5과를 두었다. 관리는 경(卿, 칙임) 1인, 감독(칙임) 1인, 과장(주임) 5인, 주사(판임) 15인 이하, 기사(주임) 3인, 기수(판임) 7인, 기수보(판임) · 감수(監守, 판임) 등을 두었다.

1907년 8월 궁내부 소속 광산도 <광업법>에 의해 관리하도록 됨에 따라 광업관계 사무와 광산관리권을 농상공부로 이관하였고, 1907년 12월에는 경리원이 완전히 폐지되었다(이 때 내장사는 내장원으로 개칭됨.).

경리원 폐지에 따라 소관 부동산은 경리원 폐지와 동시에 설치된 제실재산정리국으로 이관되어 1908년 국유화되었고, 동산(각종 잡세) 중 삼세(蔘稅) · 광세(礦稅) 등 20여종의 세는 탁지부 · 농상공부로 이관되어 국고수입으로 들어가고 염세(鹽稅) · 수산세 등 7종의 세와 식리전(殖利錢)은 폐지되었다. 이에 따라 황실재산은 대부분 일제에게 빼앗겼다.

참고문헌

  • - 『한말근대법령자료집』 Ⅳ·Ⅵ(송병기 외, 국회도서관,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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