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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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황실재산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궁내부산하 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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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근대 개항기 황실재산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궁내부산하 관청.
내용

1905년 3월에 설치되었다. 일제가 황실재산을 침탈하기 위해 내장원을 내장사와 경리원으로 분리, 독립시킬 때 설치되어 황실재산(世傳莊園의 관리, 收賭·礦業·蔘政)을 총괄하였다.

서무·삼정·지응(支應)·종목(種牧)·장원 5과를 두었다. 관리는 경(卿, 칙임) 1인, 감독(칙임) 1인, 과장(주임) 5인, 주사(판임) 15인 이하, 기사(주임) 3인, 기수(판임) 7인, 기수보(판임)·감수(監守, 판임) 등을 두었다.

1907년 8월 궁내부 소속 광산도 <광업법>에 의해 관리하도록 됨에 따라 광업관계 사무와 광산관리권을 농상공부로 이관하였고, 1907년 12월에는 경리원이 완전히 폐지되었다(이 때 내장사는 내장원으로 개칭됨.).

경리원 폐지에 따라 소관 부동산은 경리원 폐지와 동시에 설치된 제실재산정리국으로 이관되어 1908년 국유화되었고, 동산(각종 잡세) 중 삼세(蔘稅)·광세(礦稅) 등 20여종의 세는 탁지부·농상공부로 이관되어 국고수입으로 들어가고 염세(鹽稅)·수산세 등 7종의 세와 식리전(殖利錢)은 폐지되었다. 이에 따라 황실재산은 대부분 일제에게 빼앗겼다.

참고문헌

『한말근대법령자료집』 Ⅳ·Ⅵ(송병기 외, 국회도서관,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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