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석여(錫余). 출생지는 전라도 강진. 출신지는 충청도 당진. 강침(姜琛)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석제(姜碩齊)이고, 아버지는 진사 강전(姜橏)이며, 어머니는 윤욱(尹勗)의 딸이다.
1747년(영조 2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여러 벼슬을 거쳐 1762년 지평으로 사도세자(思悼世子)를 옹호하다가 삭직되었다. 그러나 곧 복직되어 도당록(都堂錄)에 뽑히고, 이어 홍문관교리로 남양어사(南陽御史) · 강화순심어사(江華巡審御史)로 나가는 등 영조의 신임을 받았다. 그 뒤 호조참의를 거쳐 1764년에 동래부사로 나갔다.
이때 앞서 조엄(趙曮)이 일본에 통신사로 갔다가 대마도에서 가져온 고구마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심고 가꾸는 법을 연구, 지도하여 그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다. 1767년 승정원 동부승지에 이어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감저보(甘藷譜)』가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