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원(黃景源: 1709~1787)은 조선 후기 영조, 정조 시기에 활동했던 문신이자 문장가로, 예학(禮學)에도 정통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본관은 장수(長水)이며, 자는 대경(大卿), 호는 강한유로(江漢遺老)이다. 32세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한 후, 주요 관직을 두루 거쳤다. 특히 관력 동안 여러 차례 문형(文衡)을 잡았으며, 정조가 규장각을 설립할 당시에 초대 제학을 맡기기도 했다. 또한 순정한 고문(古文) 작성을 추구했기 때문에 당대의 대표적인 관각(館閣) 문인으로 알려져 있다.
『강한집(江漢集)』은 금속활자본인 운각인서체자(芸閣印書體字)로 간행했으며, 총 32권 1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권에는 수록된 작품 목록이 별도로 정리되어 있으며, 책 전체를 아우르는 서문이나 발문은 따로 실려 있지 않다. 국립중앙도서관 도서이다.
1787년 저자가 세상을 떠난 뒤, 정조는 그의 문집을 간행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에 따라 교서관에서 문집 편찬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약 3년간의 작업 끝에 1790년 간행이 완료되었다.
권12에 시(詩)를 수록했고, 권3부터는 다양한 문체의 산문을 담고 있다. 그 가운데 권2732는 병자호란 이후 숙종 대에 이르기까지 명(明)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킨 인물들을 입전(立傳)하여 수록했다. 이 전기에는 「명배신전(明陪臣傳)」이라는 제목이 따로 붙어 있다. 「명배신전」은 숭명배청(崇明排淸)의 태도를 잘 보여 주는 대표적인 저술로 평가받으며, 『강한집』에서 독립된 의미를 지닌 부분으로 간주되어 별도로 간행되거나 필사되어 널리 유통되기도 했다.
황경원은 일생에 걸쳐 대명의리(對明義理)를 확고한 신념으로 견지하며, 유가적 의리를 담은 순정한 시문 창작에 힘쓴 인물이다. 특히 문장에 있어서 정조는 그를 정통 고문(古文)을 창작한 대표적인 문장가로 높이 평가했으며, 「명배신전」은 그러한 평가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성과로 꼽힌다.
이처럼 『강한집』은 저자가 평생 동안 창작한 시문을 집대성한 문집으로, 조선 후기 문형(文衡)을 담당하며 전아한 문장을 창작했던 황경원의 학문적 · 문학적 면모를 잘 보여 주는 저술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