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건국한 1392년을 원년으로 하고 채택년인 1894년을 503년으로 산정하였다.
1894년 조선정부가 동학운동에 대한 대책으로 청나라에 요청한 청군이 조선에 출병하자 이를 빙자, 출병한 일본은 군대를 동원하여 경복궁을 점령한 뒤 명성황후를 대신하여 흥선대원군을 집권시켰고, 한편으로는 흥선대원군을 견제하기 위하여 김홍집(金弘集)을 총재로 하는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를 신설, 여기서 각종의 제도개혁이 단행되었다.
군국기무처는 6월 28일 신분·제도·관습의 개혁과 아울러 모든 국내외의 공문서에 개국기년을 사용할 것을 의결하였다. 이로써 당시 사용되던 청나라 덕종(德宗)의 연호인 광서(光緖)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1392년을 원년으로 채택한 ‘건국기년’은 이듬해 11월 단발령과 함께 ‘건양(建陽)’ 연호와 양력채용이 공포, 양력 1896년 1월 1일을 기하여 폐지되었다. 개국기년의 사용은 전통적 사대종주국인 청나라와의 관계청산을 뜻하나, 상대적으로 일본의 한반도내에서의 우위를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