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책. 목판본. 1729년(영조 5) 그의 5세손인 여용(汝鎔)에 의해 편집, 간행되었다. 권두에 이광정(李光庭)의 서문과 권말에 여용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 등에 있다.
권1에 시 17수, 부 7편, 권2는 소 6편, 차(箚) 1편, 계사(啓辭) 1편, 교서 2편, 권3은 서(書) 4편, 잡저 3편, 발 1편, 제문 2편, 묘문(墓文) 1편, 권4는 부록으로 연보·행장·묘갈명·만사·제문·봉안문(奉安文)·복향문(復享文)·남명사우록(南冥師友錄)·경산지(京山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에는 주로 오건(吳健)·정복현(鄭復顯)·강익(姜翼) 등과 창화한 것이 많으며, 조식(曺植)·노진(盧禛)·유희춘(柳希春) 등 당시 석학들에 대한 만시가 있고, 「서서행일기후이자기(書西行日記後以自譏)」는 유명한 시로서 『해동악부(海東樂府)』에 수록되기도 한 작품이다.
소의 「청참보우소(請斬普雨疏)」에는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신임을 받아 쇠퇴한 불교의 중흥을 도모하려던 보우(普雨)에게 참형을 내리기를 청한 것인데, 모두 5차에 걸쳐 올린 소이다. 차의 「진군덕차(陳君德箚)」는 1578년(선조 11)에 올린 차자이며, 임금의 도리와 백성의 구제에 대한 방책을 전개하여 요순시대(堯舜時代)를 실현하려는 포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서(書)의 문목(問目)에는 그의 스승인 이황(李滉)을 비롯하여 노수신(盧守愼)에게 상제례(喪祭禮)의 의문점을 질문한 내용이다.
잡저 중 「서행일기(西行日記)」에는 배불상소(排佛上疏)를 계속 올려 보우의 참형을 적극 주장하고, 유신들과 함께 개경(開京) 부근을 돌아다니면서 양주지방과 연락을 취해 활동한 내용의 전말을 일기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을사사화 이후의 정치적 문제를 이해하는 데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