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개천 묵방리 고인돌은 북한 평안남도 개천군 노동자구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북방식과 남방식이 혼재된 고인돌군이다. 고인돌은 40여 기가 있는데 모두 지상에 무덤방[墓室]을 마련하였다. 조사된 고인돌 중 구조가 확실한 것들은 대부분 얇은 타원형의 덮개돌 밑에 시신을 묻기 위해 돌로 쌓아 만든 장방형의 돌덧널[石築墓槨]로 이루어져 있다. 고인돌은 무덤의 장축이 동서로 된 것은 뚜껑돌의 길이가 180∼330㎝ 내외, 남북으로 된 것은 300∼380㎝ 내외이다. 출토된 유물에는 묵방리형토기, 물고기모양 반달돌칼, 간돌검, 간돌화살촉 등이 있다.
정의
북한 평안남도 개천군 노동자구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북방식과 남방식이 혼재된 고인돌군. 지석묘.
개설
내용
고인돌은 무덤의 장축이 동서로 된 것은 뚜껑돌[上石]의 길이가 180∼330㎝ 내외이며, 남북으로 된 것은 뚜껑돌의 길이 300∼380㎝ 내외이다. 후자(後者)의 것은 보강시설(補强施設)이 있는 무덤으로 밖을 둘러싼 돌림돌[圍石]이 있고 막음돌[閉塞石] 시설은 전자(前者)의 것에 비해 더 견고하게 축조하는 등 서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무덤방[墓室]은 납작한 판돌[板石]을 쌓아 세 벽을 만들고 판돌을 쌓지 않은 동쪽이나 남쪽에는 큰 판돌을 세워 문처럼 만들었다. 바닥에는 벽체를 쌓은 것과 같은 크기의 판돌들을 1∼2벌 깐 것(24호)과 큰 판돌을 깐 것(20호)이 있다. 무덤방의 크기는 2호는 190×105∼103×20∼30㎝, 20호는 180×80×30㎝, 24호는 180×80×60㎝ 정도이다. 무덤방 둘레에는 막돌을 쌓아 보강 시설을 하고 그 바깥으로 네모서리와 가운데에 큰 돌을 세워 놓았다. 특히 30호 무덤방에서는 무덤방의 문 앞으로 널길[墓道]시설이 있어 주목된다. 무덤방 위에는 크고 두꺼운 판돌을 타원형으로 다듬어 올려놓았다.
출토된 유물은 묵방리형토기[墨房里型土器], 물고기모양[魚形] 반달돌칼[半月形石刀], 간돌검[磨製石劍], 간돌화살촉[磨製石鏃] 등이 있다. 토기는 흑갈색의 간토기[磨硏土器]로 젖꼭지모양손잡이[乳狀把手]가 부착되어 있다.
북한학계에서는 묵방리형 고인돌로 분류하며 뚜껑식(침촌형) 고인돌로부터 변화 발전한 것으로 본다. 껴묻거리(부장품)로 나온 묵방리형 질그릇은 청동기시대 늦은 시기의 것으로 고인돌의 연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참고문헌
- 『조선유적유물도감』 2-고조선, 부여, 진국편(조선유적유물도감편찬위원회, 외국문종합출판사, 1989)
- 「묵방리 고인돌」(장호수, 『한국고고학전문사전 청동기시대 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 「묵방리 고인돌」(장호수, 『한국고고학사전』,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 「묵방리 유적」(장호수, 『한국 지석묘(고인돌) 유적 종합조사·연구(Ⅱ)』, 문화재청·서울대학교박물관, 1999)
- 「묵방리 고인돌에 관한 몇가지 고찰」(리정남, 『역사과학』85-1, 1990)
- 「평안남도 개천군 묵방리 고인돌에 관한 몇 가지 고찰」(김기웅, 『역사과학』1985년 1호,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85)
- 「평안남도 개천군 묵방리 고인돌 발굴 중간보고」(이정남, 『고고학자료집』제3집, 1985)
- 「평안남도 개천군 묵방리 고인돌 발굴 중간보고」(김기웅, 『고고학자료집』1963년 3집, 과학원출판사, 1963)
- 「평안남도 개천군 묵방리 고인돌 발굴 중간보고」(김기웅, 『문화유산』1961년 2호, 과학원출판사,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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