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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조선후기 문신 채제공이 1781년부터 1788년 사이에 일어난 사실을 모아 엮은 정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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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문신 채제공이 1781년부터 1788년 사이에 일어난 사실을 모아 엮은 정치서.
개설

이 책은 채제공이 1781년(정조 5)부터 1788년(정조 12) 사이에 자신을 상대로 일어난 모든 사실들을 모아서 정리한 정치기록이다. 소(疏) 39편을 비롯하여 차자·사실·일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지적 사항

불분권 1책. 필사본. 간행 여부는 자세하지 않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내용

채제공은 벽파인 홍상범(洪相範) 등이 정조를 시해하려는 음모를 미리 적발하여 왕을 호위하였고, 왕의 탕평책(蕩平策)을 도와 유화정책을 펴는 등 왕의 신임이 두터웠으나, 반면에 상대방으로부터 끊임없는 탄핵과 시기와 모해를 받아 왔다. 이 책은 그 중 일부의 사실을 지적해 보인 것에 지나지 않으나, 당시 파쟁의 면모를 충분히 알 수 있다.

홍국영(洪國榮)의 몰락과 더불어 천주교에 철퇴가 가해지자, 채제공은 비록 이교도라 하더라도 모두 임금의 적자창생임은 틀림없으니 회유정책으로 그들을 다스리고, 끝내 따르지 않을 때 처벌해도 늦지 않다고 건의하였으나, 반면에 반대파들은 친서파(親西派)라는 명목을 붙여 제거할 것을 주청하였다.

「예판시소(禮判時疏)」는 이러한 반론이 일어나자 탄핵을 받은 대신으로 그 자리에 오래 있는 것이 부당하다고 지적하면서 왕에게 사직을 받아 줄 것을 요청한 글이다. 「십행윤음(十行綸音)」은 정조가 사직을 만류하는 글로 ‘지기심(知己心)’ 석 자를 하사하여 위로하였다.

그 뒤 7년 동안 이조판서 김종수(金鍾秀)를 비롯하여 교리 김재찬(金載瓚), 대사헌 이명식(李命植), 사직 조준(趙㻐), 대사간 이의행(李義行), 정언 이익운(李益運) 등이 계속 소를 올려 채제공의 처벌을 요구했으나, 정조는 그때마다 그대들의 뜻은 잘 알았으니 내가 알아서 처리한다는 비답(批答)을 내렸다.

심지어 우의정 이휘지(李徽之)와 좌의정 홍낙성(洪樂性)도 이들에 가세하여 경연이나 독대(獨對), 또는 조회석상에서 채제공의 처벌을 요구한 기록이 있으나, 그럴 때마다 정조의 신임은 더욱 두터워져 규장각제학에 임명됨으로써 『국조보감(國朝寶鑑)』을 편찬하였고, 이조판서·평안도병마절도사 등을 거쳐 우의정에까지 임명되었다.

「사우상소(辭右相疏)」는 1787년 2월에 우의정을 사임하고자 그간의 경과를 자세히 보고하면서, 이제는 나이도 많고 벼슬도 극에 달했으니,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가게 해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정조는 끝내 사직을 허락하지 않았고, 반대파들의 공격도 어느 정도 둔화되었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당시의 혼란한 정치적 상황과, 채제공 자신이 이룬 많은 업적이 정조의 총애를 입어 가능했던 것임을 엿보게 하며, 조선 후기 당쟁이 국가 이익보다 개인의 영달을 앞세운 측면이 크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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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권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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