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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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동래에서 범어사 주지, 임시정부 고문 등을 역임한 승려.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한순화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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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동래에서 범어사 주지, 임시정부 고문 등을 역임한 승려.

생애 및 활동사항

성은 김(金). 동래범어사(梵魚寺) 주지를 5회 역임하였다. 1910년 원종(圓宗)의 종정 이회광(李晦光)이 일본 조동종(曹洞宗)과 연합 조약을 체결하자, 1911년 박한영(朴漢永), 오성월(吳惺月), 진진응(陳震應), 한용운(韓龍雲) 등이 그에 대항하는 임제종(臨濟宗) 건립 운동을 일으켰다. 처음에 임시종무원을 송광사(松廣寺)에 두었다가 범어사로 옮겼는데 이에 관여하여 활동하였다.

특히 1919년 무렵 중국 상해의 임시정부가 경제적으로 몹시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밀의한 끝에 상당한 금액을 사재(寺財)에서 출연하여 임시정부에 헌납하게 하였다. 이에 따라 임시정부는 그와 담해·성월 등을 고문으로 추대하였다.

1923년 천도교에서 설립한 보성고등보통학교가 경영난에 봉착하자, 당시 총무원의 주축을 이루고 있던 통도사(通度寺)천보(天輔), 송광사(松廣寺) 찬의(贊儀), 고운사(孤雲寺)만우(萬愚), 석왕사(釋王寺)하응(河應) 등 본산 주지와 20개 사찰의 대표들이 합심하여 이 학교를 인수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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