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능지탑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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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유적
국가유산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30대 문무왕의 화장터로 추정되는 탑터.
이칭
이칭
능시탑(陵屍塔), 연화탑
시도자연유산
지정 명칭
경주능지탑지(慶州陵只塔址)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역사사건/역사사건
지정기관
경상북도
종목
경상북도 시도기념물(1982년 08월 04일 지정)
소재지
경북 경주시 배반동 621-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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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30대 문무왕의 화장터로 추정되는 탑터.
내용

1982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현재의 능지탑의 외관은 1979년에 보수할 때 임시로 정사각형 평면의 2층 석조 축단(築壇)으로 복원되었다.

기단부는 한 변의 길이가 12m, 높이가 1m인 석단으로, 상부의 낙수면은 토층으로 덮고 잔디를 심는 방식으로 마감되었으며, 둘레의 중대석에는 12지상 9구를 방위에 맞추어 같은 간격으로 기둥처럼 배치하였다.

12지상 가운데 뱀(남면)·범(동면)·용(동면) 등 3구는 없어졌다. 현존 12지상 중 일부는 낭산 동쪽 황복사(皇福寺) 앞에 있던 유구로서, 목탑터로 알려져 오다가 최근에 왕릉터로 수정된 유적지에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갑석은 연꽃을 새긴 장대석과 정사각형 대석 두 가지인데 후자는 귓돌로 사용되었다. 1층탑신부는 옥신의 한 변이 6m이고 기단부처럼 연화석을 얹었는데, 다만 상부에 굄돌 1단을 더 쌓고 토단을 경사지게 쌓아올려 사모지붕처럼 마감하고 중심부에 자연석을 마치 보주(寶珠)처럼 사용하였다. 한편 연화석은 양식적으로 8∼9세기에나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여, 석단형 유구가 후대에 조성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낳고 있다.

능지탑은 예로부터 능시탑(陵屍塔) 또는 연화탑으로 불려왔는데, 무너진 채 1층탑신 일부와 기단 약간만이 돌무더기처럼 버려져 있던 것을 신라삼산조사단(新羅三山調査團)이 1969년 이래 1971년까지 4차에 걸쳐 조사한 끝에 『삼국사기』에 기록된 문무왕의 화장터 유적으로 비정하였다.

이후 1975년의 해체·발굴조사로 정사각형 석단 중앙부에 찰주석이 지층 아래까지 세워져 있고, 찰주석(擦柱石) 하부에는 공간을 포함한 토석 유구가 있으며, 토석 유구와 주변 지층이 까맣게 그슬려 있는 것이 확인되어 화장묘(火葬墓)로 추정되었다.

그러니까 원래 창건 당시에는 목조건물로 된 묘가 있었으나 이것이 언제인가 소실되자 이 화장묘를 보존하고 예배하기 위하여 외부에 정사각형 석단을 축조한 것으로 추정하고 이를 문무대왕의 화장 장소로 비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탑 기단 내부에서 소조(塑造) 불상의 파편 여러 개와 수많은 와전이 출토되었는데, 이것들은 통일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어서, 현존 석단 이전에 창건된 건물, 즉 문무왕의 탑묘(塔廟)에 쓰였던 유물로 추정되고 있다.

학술적으로는 이른바 방단형석탑(方壇形石塔)으로 분류되고 있는 이 탑은 원래의 모습을 정확히 알기는 어려우나 지금과 같은 규모의 평면에 5층으로 쌓아올린 석조 축단형 구조물이었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현재 터의 향좌측에는 보수할 때 사용하고 남은 연화석 36개가 쌓여 있고, 그 옆에 성격이 구명되지 않은 토단 유구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낭산유적조사(新羅狼山遺蹟調査)』(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박물관, 1985)
「통일신라(統一新羅) 십이지상(十二支像)의 양식적(樣式的) 고찰(考察)」(강우방, 『고고미술』154·155, 1982)
「능지탑(陵只塔)의 구성(構成)」(신영훈, 『고고미술』128, 1975)
「신라문무대왕(新羅文武大王) 탑묘(塔廟)의 조사」(황수영, 『한국의 불교미술』, 1974)
「소위 방단식 특수형식의 석탑」(진홍섭, 『고고미술』121·122,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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