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張維: 1587~1638)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덕수(德水)이며, 자는 지국(持國), 호는 계곡(谿谷) · 묵소(默所)이다. 좌부빈객, 예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장유는 생전에 자신이 창작한 작품들을 정리해 두었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2개의 자서(自序)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장유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아들 장선징(張善澂)이 『계곡초고(谿谷草稿)』를 수습 및 정리하고 『계곡만필(谿谷漫筆)』까지 덧붙여 완질을 만들고, 박미 · 이명한 등으로부터 서문을 받아 1643년(인조 21) 광주에서 간행했다. 원집의 끝에 실린 간기(刊記)에는 교정, 인출 등을 맡았던 11명의 승명(僧名)이 기록되어 있다.
원집(原集) 34권과 만필(漫筆) 2권 총 36권 18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에 사부 17편, 권2에 표전 23편, 교서 10편, 책문 3편, 잠명찬 1편, 권3에 잡저 76편, 권4에 설 10편, 권57에 서 53편, 권8에 기 19편, 권9에 제문 42편, 권1011에 묘지명 12편, 권12에 묘갈명 16편, 권1314에 비명 17편, 권1516에 행장 7편, 권1720에 소차 79편, 권21에 계사 10편, 권22에 주본 5편, 권23에 자문 18편, 격 1편, 권24에 정문 2편, 첩 47편, 권2534에 시 1,860여 수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맨 끝에 만필 2권이 있다.
사부 가운데 「속천문(續天問)」은 중국 전국시대의 굴원(屈原)이 초회왕(楚懷王) 때 벼슬을 하다 참소를 당해 귀양 가서 지었다는 『초사(楚辭)』 중의 「천문(天問)」을 모방한 것이다. 이외 「소한문(愬旱文)」, 「견발문(譴魃文)」, 「추임부(秋霖賦)」 등의 사부 작품은 자연재해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을 읊은 것이다.
장유가 오랫동안 대제학 등의 지위에 있었던 관계로 사은표(謝恩表)와 방물표(方物表), 하전(賀箋)과 사전(謝箋) 등이 다수 실려 있다.
잡저 가운데 「전례사의(典禮私議)」, 「독정우복의례차(讀鄭愚伏議禮箚)」, 「답사계선생(答沙溪先生)」, 「위인후위조후변(爲人後爲祖後辯)」은 인헌왕후 상사(喪事)의 복제와 원종(元宗) 추숭 문제를 논한 글들이다. 이외에 「설맹장논변(設孟莊論辯)」은 맹자와 장주가 동시대의 인물이면서도 서로 만난 적이 없던 것을 이상하게 여겨 허구적인 문장을 만들어 본 것으로, 이설을 억누르고 오도(吾道)를 일으켜 세우려는 뜻을 담은 것이다.
설 가운데 「필설(筆說)」은 족제비털로 만든 붓에 개털을 섞어 만든 상술을 개탄하면서 당시 사대부의 병통을 비유하여 논한 글이고,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은 정주학의 학자들이 모두 인심과 도심을 논한 핵심은 정일집중(精一執中)에 있었음을 주장한 글이고, 「해구불하설(海鷗不下說)」은 『열자(列子)』의 구절을 논한 글로, 갈매기와 같이 욕심에 동요되지 않는 삶을 희구한 것이다.
권25~34에 수록된 한시는 오언고시, 칠언고시, 오언율시, 오언배율, 칠언율시, 칠언배율, 오언절구, 칠언절구, 육언, 잡체의 시체별로 분류되어 있다. 정홍명(鄭弘溟) · 김상헌 · 이명한 · 이안눌(李安訥) 등과 주고받은 시가 매우 많다. 이외에도 「안산별업옥후(安山別業屋後)」와 같이 안산에서 은둔할 때 지은 작품이 있으며, 「계해세여봉사호남(癸亥歲余奉使湖南)」 등의 작품은 호남 암행어사의 명을 받고 다녀오면서 지은 시이다. 「전가추흥(田家秋興)」과 같은 연작시도 있고, 「조춘서회회문(早春書懷回文)」과 같은 회문시도 있다.
『계곡만필』은 1632년(인조 10) 장유가 와병 중에 기록한 잡기로, 총 208개의 조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사자집(經史子集)에 걸친 학술상의 사소한 문제들에서 조야의 고사에 관한 견문과, 자신의 학문과 문필에 관한 자술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한 내용을 다루었다. 정주학과 육왕학의 평론, 병자호란과 화의에 관한 경위, 담배에 관한 고사,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譚)』의 기사에 대한 비판, 조선의 문장은 중국 명대 말엽의 폐단을 답습해서 고려 때의 문장만 못해졌다는 평론 등 흥미로운 기록들이 많다. 이렇게 다양한 주제와 내용을 다루고 있는 『계곡만필』을 통하여 장유의 학문하는 태도나 경향, 시사에 관한 입장, 인물 평가, 우주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 중기 한문 사대가 중 한 사람인 장유는 공적인 글로써 경세와 화국의 문장을 주도하는 한편, 사적인 문예 활동을 통해서도 문학성이 높은 작품들을 대거 창작했는데, 이 책에서 이와 같은 다양한 면모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책의 말미에 수록되어 있는 『계곡만필』은 그 조목 수가 매우 많을 뿐만 아니라 그 숫자만큼 다양한 주제와 내용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그의 학문 태도와 경향, 현실과 시사에 대한 입장과 견해,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 자연관이나 우주관, 문학사에 대한 인식 등을 검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