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남도 창녕군 계성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구덩식돌덧널무덤·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계성고분군은 흔히 비화가야(非火伽耶) 혹은 비사벌(比斯伐)로 불리던 소국의 중심고분군으로 알려진 창녕읍의 교동고분군에 버금가는 대고분군으로 영취산에서 서북쪽으로 뻗어나간 지맥의 말단부 계성평야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형성된 것이다.
이 고분군에 대한 최초의 조사는 일제시대 조선고적조사위원회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현상을 파악하면서 뚜렷한 봉분을 지닌 고분만 21호까지 호수를 부여하였다. 그 다음으로 1967년 11월에 큰무덤 1기가 문화재관리국(현, 국가유산청) 주관으로 발굴조사되었고, 이어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1968년과 1969년에 걸쳐 계남리 1호분과 4호분을 발굴조사하였다.
이후 1976년 구마고속도로가 개설될 때 도로부지 내에 있던 무덤 49기가 경상남도 주관으로 발굴조사되었고, 다시 고속도로와 국도가 확장되면서 1994년과 1998년에 사리와 명리의 중 · 소형 봉토분과 소형분들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내용
명리 일대에서 조사된 고분들 중에서 규모가 크고 잔존상태가 양호한 것은 굴식이며,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墳]은 소형유구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명리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는 경남고고학연구소와 호암미술관에 의해 4지구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그 중 Ⅰ지구에서는 중형의 봉토분과 다양한 구덩식돌덧널무덤이 조사되었다. 봉토는 직경 7m정도에 높이 1m 가량이 남아 있었다. 냇돌을 이용하여 장방형의 덧널을 축조하고 지형에 따라 한쪽 단벽에 입구와 무덤길을 마련하였다. 덧널 바닥에는 냇돌이나 풍화암반편으로 주검받침[屍床]을 마련하였다. 봉토 가장자리에는 호석(護石)을 두르고 원형 혹은 반원형의 도랑을 돌렸다.
특징
의의와 평가
출토유물로 보아 사리 · 명리 일대의 고분은 6∼7세기대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지역 고분문화 후기에 있어서 중심고분군의 변천을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된다. 특히 이 일대의 고분에서는 명문토기(銘文土器)가 많이 출토되어 주목되고 있는데, ‘대간(大干)’명 항아리 뚜껑과 항아리는 지금까지의 명문토기가 굽다리접시나 긴목항아리에 국한되는 현상과 견주어 본다면 명문 해석에 있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문헌
-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 「창녕계성고분군」(부산대학교박물관, 1995)
- 「창녕 계성리고분군-계남1·4호분」(이은창 외, 영남대학교박물관, 1991)
- 「창녕계성고분군발굴조사보고」(경상남도,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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