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수안(遂安). 본명은 계활(桂活). 호는 백연(白淵).
일찍이 만주로 이주하여 대종교에 입교, 서일(徐一) 등과 만주에서 중광단(重光團)을 조직, 항일운동에 종사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참가한 뒤 중광단을 개편하여 항일군사단체인 대한정의단을 조직, 애국청년을 포섭하여 독립군을 편성하고 『일민보(一民報)』·『한국보(韓國報)』 등 신문을 발행하였다. 대한정의단은 대한군정부로 개편되었다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권유로 다시 대한군정서로 개칭하고 재무부장으로 군자금모금활동에 주력하였다. 모금된 자금은 시베리아를 통하여 무기를 구입하거나 독립군의 군량미를 구입하는 데 사용되었다.
1920년 간북(墾北)북부총판부 재무관서의 재무관이 되어 만주교민들의 자치 및 생활향상에 힘썼고 청산리전투에도 참전하였다. 그 뒤 북만주와 시베리아일대를 내왕하며 계속 항일운동을 하였고, 대종교 포교활동을 통하여 민족사상 고취에 노력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