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김씨이고, 아버지는 대아찬(大阿飡) 숙명(叔明) 또는 숙명(夙明)으로 내물왕의 13세손이다. 아들은 청명(淸明)인데 후에 중희(重熙)로 고쳤으며, 제40대 애장왕(哀莊王)으로 즉위하였다.
800년 6월에 아들인 청명이 13세에 즉위하였으므로 계화부인은 대체로 787년(원성왕 3) 무렵에 준옹(俊邕)과 혼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준옹이 소성왕으로 즉위한 이후인 800년(소성왕 2) 봄 정월에는 왕후(王后)로 봉하여졌다.
한편 계화부인의 성(姓)이 805년(애장왕 6)에 당(唐)에서 보내온 순종(順宗)의 책명서(冊命書), 808년(애장왕 9)에 당에 사신으로 파견된 김력기(金力奇)의 상주서(上奏書), 『구당서(舊唐書)』 신라전(新羅傳)에는 ‘숙씨(叔氏)’로, 그리고 『신당서(新唐書)』 신라전에는 ‘숙씨(淑氏)’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계화부인의 진성(眞姓)이 아니라 신라 왕실이 동성(同姓)간의 혼인 사실을 당에 밝히기 꺼려서 계화부인의 아버지 이름인 숙명(叔明)에서 임시로 ‘숙(叔)’자를 취하여 가성(假姓)으로 삼아 당에 알렸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즉 당시 신라가 동성간의 족내혼(族內婚) 양상이 당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여 의도적으로 이렇게 하였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또한 『구당서』 권14 순종본기(順宗本紀) 정원(貞元) 21년 2월 무신(戊申)조, 『책부원귀(冊府元龜)』 권965 외신부 봉책(封冊)조, 『책부원귀』 권976 외신부 포이(褒異)조에는 ‘화씨(和氏)’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숙(叔)’의 오기(誤記)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