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산사(迦智山寺)는 보림사(寶林寺)의 옛 이름이다.
가지산사는 759년(경덕왕 18)에 원표(元表)가 화엄종(華嚴宗) 사찰로 창건하였는데, 859년(헌안왕 3)에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에 의해 선종(禪宗) 사찰로 변화하였다.
원표는 천보(天寶) 연간(742~755)에 당(唐)에 유학하여 서역(西域)의 성지를 순례하다가 759년 이전에 신라로 귀국하였다. 경덕왕의 개혁정치에 법력(法力)으로 도움을 주었으며, 이에 경덕왕은 특별히 교(敎)를 내려 가지산사에 장생표주(長生標柱)를 세우게 하여 사찰에 면세와 면역의 혜택을 주었다. 장생표주가 보조선사 체징의 비가 세워진 884년(헌강왕 10)까지 존재하였던 것으로 미루어 이때까지 혜택이 지속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왕실의 도움에도 가지산사에서의 화엄은 크게 성장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이 장생표주는 현재 전하지 않는다.
가지산사는 859년(헌안왕 3)에 보조선사 체징이 머무르면서 선종 사찰로 새롭게 변화하였다. 체징은 837년(희강왕 2) 당으로 유학을 갔다가 840년(문성왕 1)에 귀국하였다. 처음에 무주(武州)의 황학난야(黃壑蘭若)에 머무르다가 859년 10월에 헌안왕의 거듭되는 요청으로 가지산사로 옮겨서 주석(住錫)하였다. 이후 861년(경문왕 1)에 가지산사를 증축하여 많은 제자들을 교화하다가 880년(헌강왕 6) 4월에 입적(入寂)하였다. 헌강왕은 883년 3월에 교를 내려서 시호를 보조(普照), 탑호를 창성(彰聖)이라 하고, 절 이름을 보림(寶林)이라고 사액(賜額)하였다. 이후에 가지산사는 보림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가지산사는 신라 하대의 선문구산(禪門九山) 중에서 가장 먼저 개산(開山)한 가지산파(迦智山派)의 중심 도량(道場)이 되었다. 가지산파는 가지선문(迦智禪門) 또는 가지산선문(迦智山禪門)이라고도 하는데, 초조(初祖) 도의(道義), 제2조 염거(廉巨), 제3조 체징으로 계승되었다. 이 종파는 고려말까지 명맥을 유지하며 일연(一然)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