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 교주 손병희(孫秉熙)가 사망한 이후 1922년 천도교 중진간부들이 교주의 애국정신을 계승하여 항일민족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고, 그 조직체로서 이 위원회를 결성하였다.
고문에 이종훈(李鍾勳), 위원장에 홍병기(洪秉箕), 부위원장에 최동희(崔東曦)를 선임하고, 다음과 같이 각 부서를 결정하였다. 비서 송헌(宋憲), 외교부장 최동희, 해외조직부장 이동락(李東洛), 해외선전부장 김광희(金光熙), 국내조직부장 이동구(李東求), 국내선전부장 김봉국(金鳳國), 재정부장 박봉윤(朴奉允)이었다.
이와 같이, 부서를 구성한 뒤에 최동희·김광희·김홍종·강희도는 연해주방면으로, 이동락·김봉국·이동구는 만주지역으로 건너가 각 민족단체와 연락하여 활동하기로 하였다.
만주로 건너간 이동락·김봉국·이동구 등은 각지의 단체대표들을 규합하여, 1926년길림(吉林)의 양기탁(梁起鐸)의 집에서 민족운동지도기관으로 고려혁명당(高麗革命黨)을 결성하였다. 고려혁명당은 정의부(正義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