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110장). 석판본.
1929년에 허목의 11세손 허혁(許䓇)이 원본이 장차 인멸될 것을 걱정하였다. 허혁은 허목이 『고문운율』을 편집한 지 265년 만에 한 통을 영사(影寫)하여 간행하여 세상에 널리 보급하였다.
책머리에 허목의 서문이 고문체로 기록되어 있다. 이 서문은 이 책을 간행할 때 고문으로 집자(集字)하여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은 고문을 4성(聲)인 평·상·거·입의 순으로 배열하였다. 각 성조의 첫 장에 목록이 붙어 있고 동일한 운(韻)에 따라 집자하고 전서체 밑에 해서(楷書)를 써놓았다. 운율은 『광운(廣韻)』의 108운 체재를 따르고 있다. 책 말미에는 허혁의 발문이 붙어 있다.
허목은 고문기자(古文奇字)를 즐겨 쓰는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젊은 시절부터 고문서체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고문서체가 진나라 이후에 어지러이 흩어져버린 점을 탄식하여 노경(老境)에 이르기까지 고문서체를 틈틈이 연구하고 기록해두었다. 1664년(현종 5)에 연구결과를 4권으로 엮고 ‘고문운율’이라 명명하였다. 이때가 허목의 나이 70세 되던 해이다.
허목은 전주체(篆籒體)라 하여도 육서고법(六書古法)이 아니면 보지 않았고 쓰지도 않았다. 그리고 허목은 부단히 고대의 조적(鳥跡)·과두(蝌蚪) 등의 문자를 노력해서 찾아 『고문운율』 이외에도 『고문운부(古文韻府)』와 『금석운부(金石韻府)』 등을 편집하였다고 허혁의 발문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을 본다면 허목은 전문(篆文)의 집대성자이다.
『고문운율』은 한국의 고문서체 연구에 도움을 주는 귀한 자료이고, 저자의 상고주의(尙古主義) 정신의 일면을 담고 있는 책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원래의 허목 수사본(手寫本)은 9책으로 종가에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장서각도서에는 석판본 이외에도 필사본으로 4권 4책이 있다. 장서각본은 수사본을 재편집한 것으로 추정된다. 필사본은 석판본의 체재와 내용과 다소 차이가 있다. 장서각도서 필사본은 표지에는 ‘고문운율’이라 되어있고, 본문에서는 ‘고문운율초(古文韻律抄)’로 기재되어 있다.
필사본은 4성에 따른 배열은 같지만 해서 뒤에 고문을 기록하고 있는 점이 다르고, 제4책 끝부분에 「고문통용분서(古文通用分序)」가 부록형식으로 붙어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고문통용분서」는 그의 『고문운부』에서 뽑아 수록하여놓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