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 난의 주모자이다. 아버지는 고수일(高守一)이다.
영조가 즉위함에 따라 소론이 실각하자 정희량(鄭希亮) · 이인좌 등이 불평분자를 규합하여 밀풍군(密豊君) 이탄(李坦)을 추대하여 무력에 의한 정권쟁탈을 꾀할 때 호남지방에서 가담하였다.
1728년 3월 이인좌가 충주를 점거하자 성득하(成得夏)의 집에서 10여명이 모의하여 50여인의 민병을 초집하고 부안을 공략하려 하다가 체포되어 처형당하였다.
공초(供招)에 의하면, 함께 거사에 가담한 사람은 성득하 · 성상하(成尙夏) 형제를 비롯하여 진사 김수종(金守宗) · 박창한(朴昌漢) · 김창수(金昌洙), 그리고 파총(把摠)인 임진량(任震亮) 등으로 장사 30여명이 우두머리가 되고, 또 태인현감 박필현(朴弼顯) 등 군사 수백인이 가담한 것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