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3월 정홍교(丁洪敎) 등과 “소년은 미래의 주인임을 알라”라는 표어를 내걸고 반도소년회(半島少年會)를 조직하여 지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9월 정홍교 등 반도소년회계열이 중심이 되어 방정환(方定煥)의 소년운동협회에 맞서는 단체로 경성소년연맹회를 창립하였다.
그러나 일제당국이 경성소년연맹회라는 명칭사용을 반대하자 오월회(五月會)로 바꾸었다. 이로써, 소년운동은 방정환의 소년운동협회와 정홍교의 오월회로 분립되었다.
1927년 10월 소년운동협회와 오월회계통의 64개 소년단체가 조선소년연합회를 결성함으로써 소년운동은 단일화되었다. 이 통합단체인 조선소년연합회의 중앙사무서기로 선임되어 실질적으로 연합회의 운영을 총괄하였다.
그리고 1928년 조선소년연합회가 회명을 조선소년연맹으로 개칭한 뒤 중앙집행위원이 되었고, 1933년 조선어린이날 중앙준비위원회가 구성되자 총무부를 담당하였다. 저서로는 『조선동요선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