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재우득록 목판 ( )

곤재우득록 목판
곤재우득록 목판
출판
유물
국가유산
조선 중기의 학자 곤재(困齋) 정개청(鄭介淸, 1529~1590)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목판.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곤재우득록목판(困齋愚得錄木版)
분류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왕실본
지정기관
전라남도
종목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유산(1987년 06월 01일 지정)
소재지
전남 함평군 엄다면 제동길 8 (엄다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중기의 학자 곤재(困齋) 정개청(鄭介淸, 1529~1590)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목판.
서지적 사항

1987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원래 108판이었으나 권1은 28매 중 13매, 권2는 27매 중 16매, 권3은 33매 중 11매, 부록 20매 중 8매 등 48매만이 남아 있다.

내용

문집의 판각작업은 1689년(숙종 15) 왕명으로 홍문관에서 등진(謄進) 작업이 착수된 뒤 나만성(羅晩成)과 나두동(羅斗冬)에 의해 교정이 완료되고, 1691년 전라감사 이현기(李玄紀)가 나두춘(羅斗春)을 시켜 판각을 도와줌으로써 비롯되었다. 무안현감 홍만조(洪萬朝)는 윤세태(尹世泰) · 고완(高玩) 등 무안유생들을 모아 판각하여 1692년 여름에 완성하였다. 부록은 1703년에 이루어졌다.

정개청은 자는 의백(義伯), 호는 곤재, 시호는 문청공(文淸公)이다. 어린 시절 보성의 영주산사에서 성리학을 비롯하여 천문 · 지리 · 의학 등의 학문을 익혔다. 그후 서경덕을 스승으로 박순(朴淳)과 교류하였으며, 1570년경에 함평군 엄다면 엄다리 제동 마을로 귀향하여 정사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이후 정여립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의 저서로는 『우득록』 이외에 『수수기(隨手記)』와 『변례편성(變禮編成)』이 있지만, 수수기와 변례편성은 기축옥사 때 분실되었다고 전한다.

정개청의 『우득록(愚得錄)』은 334편의 글이 실려 있으며 본편 3책, 부록 1책으로 되어 있다. 서문은 1681년(숙종 7)에 허목이 지었다. 본편 3책 중 1~2책은 성리제설(性理諸說)과 서기(序記)가 수록되어있고, 3책에는 상소 · 제문 · 서(書) · 습유(拾遺)가 실려 있다. 부록 상권에는 정개청의 세계와 사실(事實), 하권에는 행장과 허목이 쓴 곤재전(困齋傳)이 수록되어 있다.

이 목판은 전라남도 함평군 엄다면 엄다리 고성정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고, 1987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정개청의 문집 판목 전체가 다 남아 있지는 않지만, 문집의 내용을 통해 당시 호남 사림들의 동향과 인맥을 살펴볼 수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도록-도지정문화재편-』(전라남도, 1998)
『국역우득록』(전라남도, 1988)
『우득록목판 조사보고서-1986년도 지정문화재 조사보고서 2-』(이해준, 전라남도, 1986)
『우득록(愚得錄)』(鄭介淸, 한국고전번역원, 『韓國文集叢刊』, 2013)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김효경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