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랑 ()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일부 지방 고을의 토착 세력에게 특수 관직으로 내려주었던 토관직의 정8품 관계.
제도/법령·제도
제정 시기
1434년(세종 16)
시행 시기
조선시대
내용 요약

공무랑은 조선시대, 일부 지방 고을의 토착 세력에게 특수 관직으로 내려주었던 토관직의 정8품 관계이다. 조선 초기 세종 · 세조 때에 함경도와 평안도의 함흥부, 경원부, 영북진, 경성부, 의주와 경상도 경주, 전라도 전주 등에 토관직 관계로 설치된 후, 『경국대전』의 영흥부, 평양부, 영성대도호부, 경성도호부에 수록되어 조선 말기까지 존속되었다.

정의
조선시대, 일부 지방 고을의 토착 세력에게 특수 관직으로 내려주었던 토관직의 정8품 관계.
제정 목적

고려 말기에 원나라에서 되찾은 영토를 원활히 통치하기 위하여 토착 세력에게 특수 관직으로 내려주었던 토관(土官)을 조선 초기 세종 때에 영토 확장이 이루어지면서 여러 고을로 확대시키고 조직 체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동반 정8품 주1의 명칭을 공무랑으로 정하였다.

내용

토관계가 처음 제정된 것은 1434년(세종 16) 4월이다. 당시 함경도와 평안도 각 고을 주6의 동서반(東西班) 자계(資階)를 정하면서 주7 정8품의 위호를 공무랑으로 정하였다. 당시 공무랑에 해당하는 직책은 함흥부(咸興府)의 주2서(迎送署) 직장(直長), 경원부(慶源府)의 주3서(支應署) 직장, 영북진의 지후서(支候署) 직장 등이다. 이어서 1436년(세종 18) 윤6월 경성부(鏡城府)에도 토관을 처음 설치하였는데, 이때 정8품 공무랑에 해당하는 직책은 영선서(營繕署) 직장이었다.

1457년(세조 3) 6월에는 경상도의 경주와 전라도의 전주에도 토관을 설치하고, 평안도 · 주4 토관의 예에 의하여 주5을 마련하여 주도록 하였는데, 이곳 토관의 동반 정8품 자계도 공무랑으로 하였다. 그러나 경주와 전주 토관의 공무랑에 해당하는 관직은 전례사(典禮司) 승(丞)이었다. 1460년(세조 6) 4월 의주에 설치한 토관직의 동반 정8품 관계도 공무랑인데, 이곳의 공무랑 직책은 감진사(監鎭司) 부승(副丞)이었다.

그런데 이상의 조선 초기에 설치된 토관의 관계인 공무랑이 맡는 직책이 법전으로 정비된 『 경국대전』의 규정에서는 관사(管事)로 달라져서, 영흥부(永興府)는 도무사(都務司), 주8, 융기서(戎器署), 사창서(司倉署), 영작서(營作署)의 관사, 평양부는 제학서, 융기서, 사창서, 영작서의 관사, 영변대 도호부(寧邊大都護府), 경성도호부(鏡城都護府)는 융기서 · 사창서 · 영작서의 관사 등으로 수록되어 있다.

변천사항

조선 초기에 토관직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공무랑 토관 관계는 『경국대전』에 수록되었고, 조선 말기인 1865년(고종 2)의 『대전회통』에도 법제적으로 존속되었다.

의의 및 평가

조선 초기에 정부는 국토를 확장하고 지방을 원활히 통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토관직을 정비하였다. 이 과정에서 토관직의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토관직 운영의 통일성과 합리성을 지닐 수 있었다.

참고문헌

원전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세조실록(世祖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단행본

이성무, 『조선초기양반연구』(일조각,1980)

인터넷 자료

조선왕조실록사전(http://waks.aks.ac.kr/site/encysillok/)
주석
주1

관리나 벼슬의 등급.    우리말샘

주2

맞아들이는 일과 보내는 일.    우리말샘

주3

조선 시대에, 벼슬아치가 공무로 출장 갔을 때에 필요한 물품을 대어 주던 일. 출장지 지방 관아에서 맡아 하였다.    우리말샘

주4

조선 시대에 둔 팔도의 하나. 태종 16년(1416)에 영길도를 고친 것인데, 성종 1년(1470)에 영안도(永安道)로 고쳤다가 중종 4년(1509)에 다시 함경도로 고쳤다.    우리말샘

주5

벼슬아치에게 일 년 또는 계절 단위로 나누어 주던 금품을 통틀어 이르는 말. 쌀, 보리, 명주, 베, 돈 따위이다.    바로가기

주6

고려ㆍ조선 시대에, 평안도와 함경도 지방 사람들에게 특별히 베푼 벼슬. 지방 토호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관찰사나 절도사가 그 지방에서 유력한 사람을 선발하여 임명하였다.    우리말샘

주7

양반 가운데 ‘문반’을 달리 이르던 말. 궁중의 조회 때 문관은 동쪽에, 무관은 서쪽에 벌여 선 데서 나온 말이다.    우리말샘

주8

조선 시대에, 영흥ㆍ함흥ㆍ평양의 각 부(府)에 둔 토관직 문관의 직무를 집행하던 곳.    우리말샘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