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신은 고려시대의 비용사(備用司)로서, 이것이 1310년(충선왕 2) 요물고(料物庫)로 개칭되어 조선 건국 초기까지 지속되다가 1401년(태종 1) 7월 관제를 재정비하면서 공정고로 고쳤다.
관원으로는 고려시대 이래 종5품 사(使) 1인, 종6품 부사(副使) 1인, 종8품 주부(主簿) 2인을 두었다. 1414년에 관제를 다시 개정하면서 주부를 승(丞)이라 칭하였다. 청사는 북부 광화방(廣化坊)에 있었다.
1422년(세종 4) 도관서(䆃官署)라고 고쳤다가 성종 초에 다시 사도시(司䆃寺)로 개칭하였다. 이 때 정3품아문으로 승격되었고, 정(正) 이하 5인의 관원을 두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