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소학리 효자향덕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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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소학리 효자 향덕비
공주 소학리 효자 향덕비
고대사
유적
문화재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효자 향덕을 기린 정려비.
시도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공주소학리효자향덕비(公州巢鶴里孝子向德碑)
지정기관
충청남도
종목
충청남도 시도유형문화유산(1982년 12월 31일 지정)
소재지
충남 공주시 소학동 76-6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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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효자 향덕을 기린 정려비.
내용

1982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공주에서 논산으로 가는 국도변인 소학동에 신 · 구 2기의 비와 주초(柱礎) 2개가 남아 있다. 이 2기의 비는 신라 경덕왕대(742∼765)의 효자(孝子) 향덕(向德)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비(旌閭碑)이다.

현재 남아있는 구비는 상단부가 파손 · 유실되어 하단부만이 잔존하고 있는데, 그 크기는 높이 40㎝, 너비 40∼50㎝, 두께 33㎝로 “之閭(지려)”와 “三月日重立(삼월일중립)“이라는 글자만이 남아 있다.

이 비 전면에 각자한 글자 중 ‘重立(중립)’이라 한 것을 보면 경덕왕 당시의 것은 아닌 듯하나 비석의 형태와 형상, 비석의 전후좌우에 유존(遺存)하는 통일신라기 초석(礎石) 등으로 보아 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인다.

구비와 같이 서 있는 신비는 전체 높이 160㎝로, 8각대석(八角臺石) 위에 규형(圭形)의 비신(碑身)을 하고 있으며, 조선 영조 17년(1741)에 건립한 것으로 향덕의 효성을 기리는 명문(銘文)을 각자하였다. 초석 2개는 원형주좌(圓形柱座)를 조출(彫出)한 방형초석으로 통일신라기의 일반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다.

향덕은 신라 경덕왕 때 사람으로 효성이 지극하여 국가에서 표창하였는데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정려(旌閭)를 내려 준 인물이다. 《삼국사기》 권48 열전(列傳)에 그의 효행이 기록되어 있다. 이 비석은 1982년 12월 31일 충청남도 지방지정문화재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문화재해설』(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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