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대전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900㎡, ‘비름들’마을 동편에 해발 200.1m의 신선봉이 있으며, 이 산 정상부에 산성형태의 석축으로 둘러싸인 유적이 위치하고 있다. 산 정상부에 있는 바위는 ‘신선바위’라 부르고 있다.
이 유적은 산 정상부에 군데군데 놓여진 거대한 암반(岩盤)을 중심으로 동서 40m, 남북 15∼20m의 규모에, 동서를 장축으로 하는 긴 타원형의 산정식산성(山頂式山城)과 흡사하게 석축으로 둘러싸여 있다.
유적 주위의 석축은 현재 가장 잘 남아 있는 남벽의 일부에서 8∼10단, 높이 1.5∼2m 정도가 확인되고 있다. 또한 정상부에 오르기 전의 서단부 아래 경사면에 계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축조된 석축이 지표상에 3단 정도 노출되어 있다.
석축 내 중앙부위에 놓인 거대한 암반은 절반이 갈라져 폭 70∼90cm의 틈새를 이룬다. 그 위로는 판석(板石)형태의 거대한 바위가 인위적으로 올린 것처럼 놓여 있어 덮개돌처럼 보인다. 개석과 전면에 있는 또다른 커다란 암반의 상면(上面)에는 마멸이 심해 판독이 어려운 고졸(古拙)한 글자와 기호(記號)처럼 보이는 형태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틈새의 가운데 부근 한쪽 면에는 ‘佛(불)’자가 크게 주서(朱書)되어 있다. 맞은 편에는 반면을 직사각형으로 다듬은 후 해서체(楷書體)로 ‘惺惺主人翁 惶惶上帝位(성성주인옹 황황상제위)’란 각자와 그 옆에 유려한 초서체로 ‘彌神藏(미신장)’이 각기 음각(陰刻)되어 있다.
갈라진 암반의 좌측편 전면 중앙과 우측에 떨어져 놓여진 암반에는 주공(柱孔)으로 보이는 직경 25cm, 깊이 20cm의 홈이 520cm의 간격을 두고 파여 있다. 홈은 솟대와 같은 표상물을 현시(顯示)하는 기둥을 세우는 용도로 추정된다.
한편, 홈이 파진 바위에 의지해서 하늘을 향해 우뚝 선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남녀의 상징물이 서로 마주한 형태로 보인다. 틈이 벌어진 바위는 여근(女根)과 같고 융기한 바위는 남근(男根)과 유사한 형태를 띤다. 이 암반을 대상으로 거석숭배의 하나인 성신앙(性信仰)이 성행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신선봉은 백제시대에 한 왕자가 태어난 곳이라 한다. 마을에 ‘신선바위’ 곳곳에는 신선이 된 왕자의 활동 흔적이 남아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