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데 모두 목조 초가집이다.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2칸이며 앞에 솟을대문이 있다. 안채는 1800년경에 건립되었고 사랑채는 1926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광복 전에 안채가 허물어졌는데 1981년 안채와 담장을 복원하였다. 이상재는 1850년에 태어났으며, 일제강점기 때 종교운동과 청년운동에 투신한 인물이다.
독립협회ㆍ만민공동회 등에 관여하였으며, 조선교육협회(朝鮮敎育協會) 회장ㆍ소년연합척후대(少年聯合斥候隊 : 보이스카웃) 총재ㆍ신간회(新幹會)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27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