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공씨(水原貢氏)의 시조. 1216년(고종 3) 거란이 침입하여 서경을 거쳐 이듬해 개경 선의문(宣義門)에 이르렀다가 동주(東州: 지금의 鐵原)·원주·제주(堤州: 지금의 堤川)를 유린하고, 명주(溟州: 지금의 江陵)를 거쳐 북쪽 여진(女眞) 땅으로 패주하였다.
이 때 공천원은 차장군(借將軍)으로 좌군병마사가 되어 풍양현 효성현(曉星峴: 지금의 楊州郡)에서 싸웠으나 패배하였으므로, 대경(大卿)으로 좌천되었다가 다시 좌군병마사가 되었다.
1221년(고종 8) 우복야(右僕射), 이듬해 추밀원부사·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가 되고, 1223년 예부상서가 되었다. 1226년 추밀원사(樞密院使), 이듬해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이부상서(吏部尙書), 1228년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