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대한제국기 때, 유림의 대표로 성토문을 지어 일본의 만행을 꾸짖었으며, 말년에는 집 근처에 정사를 짓고 후학 양성을 위해 힘쓴 유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중일전쟁 중 곡부(曲阜)에 있는 공자사당이 파괴되자 통분을 금치 못하고 성토문을 지어 일본의 만행을 준열하게 꾸짖었으며, 전국 유림이 수원에 모여 성토하자 대표가 되어 성토문을 짓기도 하였다. 말년에는 후생의 강학을 위해 집 근처에 서림(書林)이라는 정사를 짓고 후학지도에 전념하였다.
그는 일본을 문장으로 토주(討誅)하는 것을 필생의 사상으로 실천하였으며, 당시 기정진(奇正鎭)과 전우(田愚) 학파 간에 논란의 쟁점이었던 이기설(理氣說)과 사서(四書)의 훈고학적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저서로는 『도봉집』이 있다.
참고문헌
- 『도봉집(道峰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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