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박해규의 문인 우성동(禹成東)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이화상(李華祥)의 서문과 권말에 우성동의 발문이 있다.
8권 3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권1·2에 시 143수, 권3·4에 서(書) 15편, 권5·6에 잡저 17편, 서(序) 2편, 권7에 기 6편, 발 1편, 축문 1편, 제문 3편, 유사 1편, 그리고 부록으로 행장·묘갈명·유호강사기(酉湖講舍記) 각 1편, 권8에 문인수계록(門人修稧錄)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 가운데 「차이지봉환선정십운(次李芝峰喚仙停十韻)」·「금도팔경(金島八景)」·「앵무배팔영(鸚鵡盃八詠)」·「강남행(江南行)」 등의 작품들은 저자의 문학적 세계를 대변하고 있다. 또한 자기의 생활모습을 읊은 「우음(偶吟)」도 주목을 끈다.
서(書)는 대개가 학술문답의 편지인데, 그 중 「답김계운낙현(答金溪雲洛鉉)」은 태극(太極)을 논한 「황극내편(皇極內篇)」에 대한 통론과 주돈이(周敦頤)의 『통서(通書)』에 대한 변론이며, 「답이소산응진(答李素山應辰)」은 이기(理氣)에 대한 변론과 귀신에 대한 문답들이다.
이 밖에 「답호당별지(答壺堂別紙)」는 김평묵(金平默)과 이항로(李恒老)의 관계에 대한 변증이고, 「답유정재종형(答留亭再從兄)」은 심성·이기의 학문에 대한 강론 10여 편이며, 「답재종제정일(答再從弟正一)」은 예설에 관한 문답으로, 맏아들이 죽었을 때의 조주(祧主: 사제권자) 관계를 주로 다루었다.
잡저 가운데 「대손익책(對損益策)」에서는 당시 조정의 기강이 문란한 것을 지적하고, 과거제도의 개정을 비롯하여 정교(政敎) 전반에 걸쳐 점진적으로 개혁해서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삼정책(三政策)」에서는 삼정이 시의(時宜)를 잃어 국민생활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국가 발전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것을 시급히 시정하여 국가의 기본 정책을 수행하는 데 차질이 없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 밖에도 「귀복보설(龜卜補說)」은 상수학(象數學)이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지적하여 본래의 구복설을 보완한 것이며, 「이기주배설(理氣主配說)」은 이기에 대해 주리와 주기의 절충을 시도한 것이다. 「서정록(西征錄)」은 저자가 초산부사로 부임하면서 쓴 기행문이고, 「신미록(辛未錄)」은 장릉(莊陵)과 서원 철거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