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간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전기에, 성균관사성, 공주목사, 강릉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원정(元靜)
  • 죽재(竹齋)
인물/전통 인물
  • 본관현풍(玄風)
  • 사망 연도1593년(선조 2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성균관사성|공주목사|강릉부사
  • 출생 연도1529년(중종 24)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능하 (단국대학교동양학연구소, 한학)
  • 최종수정 2025년 06월 04일
죽재문집 미디어 정보

죽재문집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성균관사성, 공주목사, 강릉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원정(元靜), 호는 죽재(竹齋). 사인 곽지견(郭之堅)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상산김씨(商山金氏)로 부사 김수돈(金守敦)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46년(명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550년 형조좌랑에 임명되었다. 1552년 대동찰방 겸 수은어사(大同察訪兼搜銀御史)로 있을 때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심통원(沈通源)의 짐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모두 뒤져서 불살라버렸다.

이 사실이 관찰사를 통하여 조정에 보고되어 심통원이 파직당하자, 그의 보복이 두려워 미친 사람 행색으로 가장하고 소를 올리는 길로 서울을 떠났다. 그 뒤 10여 년 동안 피신하여 살았으며, 1566년 다시 성균관전적에 제수되었다.

당시 문정왕후(文定王后)가 불교의 부흥을 꾀하자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하였다가 언관의 자리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그 뒤 공조 · 형조 · 예조의 좌랑과 정랑 · 통례원통례 · 성균관사성 · 장악원판사 · 사제감 · 종부시정 · 영천군수 · 공주목사 · 강릉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사원(徐思遠)과 함께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을 찾아가 싸우다가 김성일이 죽고 진영이 와해되어 돌아오던 중 죽었다. 저서로는 『죽재문집(竹齋文集)』 2권 1책이 있다. 월암사(月巖祠)에 봉향되었다.

참고문헌

  • - 『명종실록(明宗實錄)』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죽재문집(竹齋文集)』

주석

  • 주1

    :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七(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七(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3

    : 중국행 : 명종실록21권, 1556년(명종 11) 11월 2일. "헌부가 북경에 가는 통사들이 함부로 무역한 것에 대해 처벌할 것을 아뢰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