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성균관사성, 공주목사, 강릉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 사실이 관찰사를 통하여 조정에 보고되어 심통원이 파직당하자, 그의 보복이 두려워 미친 사람 행색으로 가장하고 소를 올리는 길로 서울을 떠났다. 그 뒤 10여 년 동안 피신하여 살았으며, 1566년 다시 성균관전적에 제수되었다.
당시 문정왕후(文定王后)가 불교의 부흥을 꾀하자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하였다가 언관의 자리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그 뒤 공조 · 형조 · 예조의 좌랑과 정랑 · 통례원통례 · 성균관사성 · 장악원판사 · 사제감 · 종부시정 · 영천군수 · 공주목사 · 강릉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사원(徐思遠)과 함께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을 찾아가 싸우다가 김성일이 죽고 진영이 와해되어 돌아오던 중 죽었다. 저서로는 『죽재문집(竹齋文集)』 2권 1책이 있다. 월암사(月巖祠)에 봉향되었다.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죽재문집(竹齋文集)』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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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七(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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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七(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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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중국행 : 명종실록21권, 1556년(명종 11) 11월 2일. "헌부가 북경에 가는 통사들이 함부로 무역한 것에 대해 처벌할 것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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