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 때 좌정언(左正言)·비서감·중서사인(中書舍人)·전중감·간의대부를 지내면서 전후 일곱 차례에 걸쳐 원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충렬왕 초에 국학대사성(國學大司成)을 거쳐 전법판서(典法判書)가 되었다.
1279년(충렬왕 5)에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진사 33인과 명경 2인을 뽑았다. 그 해 전란 때문에 생긴 유망민(流亡民)을 불러모으기 위하여 계점사(計點使)가 되어 전라도에 나갔다가 내고(內庫)의 처간(處干: 佃戶)을 부역시키지 말라는 왕명을 어긴 죄로 이듬해 파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