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 사간원과 사헌부에서 언관으로 활동한 문신, 학자.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주로 대간(臺諫)으로 있으면서 공론(公論)울 주도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1662년(현종 3)에 사헌부 장령(掌令)으로 있으면서 우의정 정유성(鄭維城)을 탄핵하였다. 탄핵을 받은 정유성은 사직 상소를 올렸다. 이 일로 인해 곽제화는 경성판관(鏡城判官)에 제수되었다.
하지만 사간(司諫)김우형(金宇亨) 등이 상소를 올려 곽제화의 외직 임명을 철회할 것을 건의하였다. 김우형은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이지 않자 인피(引避)하여 현종을 압박하기도 하였다. 우의정 정유성도 재차 사직 상소를 올렸다. 결국 경성판관에 제수된 곽제화는 사은숙배(謝恩肅拜)를 하였음에도 임지에 부임하지 않았다. 현종은 곽제화에게 임지로 떠나라는 하교(下敎)를 내리기까지 하였다.
우의정 정유성의 탄핵과 곽제화의 경성판관 제수를 둘러싼 현종과 대간들의 갈등은 지속되었다. 결국 현종은 대간들이 곽제화의 외직 임명 철수를 요청하는 건의를 올리지 못하게 하였다. 이후 경성판관 곽제화는 월과(月課)를 세번이나 짓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직되었고, 해당 고을인 경성에 충군(充軍)되었다. 1675년(숙종 1년) 사헌부 헌납으로 조정에 복귀하였다. 이후 사간과 집의(執義)를 역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숙종실록(肅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인터넷 자료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index.aks)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http://www.grandculture.net)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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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조선시대에, 사간원에 둔 정오품 벼슬. 태종 1년(1401)에 보궐(補闕)을 고친 것으로 임금의 잘못을 지적하여 고치게 하는 일을 맡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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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가계 : 『경인증광사마방목(庚寅增廣司馬榜目)』(규장각한국학연구원[想白古351.306-B224s-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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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사마 급제 : 『경인증광사마방목(庚寅增廣司馬榜目)』(규장각한국학연구원[想白古351.306-B224s-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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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대지의 편평한 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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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조선시대에, 사간원에 속한 정육품 벼슬. 태종 1년(1401)에 문하부의 낭사가 사간원으로 독립할 때 습유를 고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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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임금이나 어른,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잘못을 고치도록 크게 간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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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조선시대에, 사헌부(司憲府)에 속한 정사품 벼슬. 태종 원년(1401)에 사헌시사를 고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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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조선시대에, 사간원에 속한 종삼품 벼슬. 세조 12년(1466)에 지사간원사를 고친 것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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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공동으로 책임을 지고 일을 피하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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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예전에,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며 공손하고 경건하게 절을 올리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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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군대에 편입시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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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고려 말기ㆍ조선 전기에, 사헌부에 속한 정삼품 벼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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