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이자 학자.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둘째 형 김덕령은 순절한 형 김덕홍의 뒤를 이어 의병을 일으켰다. 그의 의병 활동은 형에 대한 복수의 성격이 강하였다. 거병 직후 둘째 형 김덕령은 도원수(都元帥) 권율로부터 초승장(超乘將)이란 칭호를 받았다. 분조(分朝)를 이끌던 광해군은 김덕령에게 익호장(翼虎將)이라는 칭호를 내려주었다. 의병장으로서 기치를 세웠던 작은 형 김덕령은 두 차례에 걸쳐 옥사에 연루되었다. 그는 1596년(선조 29) 이몽학(李夢鶴)의 난이 일어났을 때 무고를 당해 죽었다.
김덕보는 두 형이 비명(非命)에 죽은 것을 애통히 여겨 세상 일에 뜻을 두지 않았다. 그는 광주 무등산에 풍암정(楓巖亭)을 짓고 은둔하여 학문과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1627년(인조 5) 후금(後金)이 조선을 침입한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안방준(安邦俊)과 합심하여 창의하고자 하였으나, 노병으로 전장에 나가지 못하고 죽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김충장유사(金忠壯公遺事)』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정조실록(正祖實錄)』
- 『홍재전서(弘齋全書)』
인터넷 자료-
- 한국고전번역원(https://www.itkc.or.kr)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index.aks)
주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