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왕족의 서얼 출신으로 서울에 살았으나, 성품이 불량하고 행실이 좋지 않으므로 그 아버지에게 쫓겨나서 충청도·전라도 사이를 전전하였다.
임진왜란 중에 장교(將校)가 되었다가, 국사가 어지러움을 보고 모속관(募粟官: 식량을 모으는 임무를 맡은 관리) 한현(韓絢) 등과 함께 홍산(鴻山) 무량사(無量寺)에서 모의를 하고 의병을 가장하여 조련을 실시하였으며, 동갑회(同甲會)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친목회를 가장, 반란군 규합에 열중하였다.
한현은 어사 이시발(李時發) 휘하에서 호서(湖西)의 조련을 관리하라는 이시발의 명을 받았으나, 민심이 이반되고 방비가 없음을 알아채고 이몽학과 함께 거사할 것을 꾀하였다. 김경창(金慶昌)·이구(李龜)·장후재(張後載), 사노(私奴) 팽종(彭從), 승려 능운(凌雲) 등과 함께 승속군(僧俗軍) 600∼700명을 거느리고 홍산 쌍방축(雙防築)에 모였다.
1596년(선조 29) 7월 일당이 야음을 틈타 홍산현을 습격하여 이를 함락하고, 이어 임천군(林川郡)·정산현(定山縣)·청양현(靑陽顯)·대흥현(大興縣)을 함락한 뒤 그 여세를 몰아 홍주성(洪州城)에 돌입하였다.
그러나 목사 홍가신(洪可臣), 무장 박명현(朴名賢)·임득의(林得義) 등의 훌륭한 방어와 반란군 가운데 이탈하여 관군과 내응하는 자가 속출, 반란군의 전세가 불리하게 되자 부하 김경창·임억명(林億命)·태근(太斤) 3인에 의하여 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