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필사본과 함께 1917년 영창서관(永昌書館)에서 발행한 활자본이 전한다. 원나라 때 인물인 주인공 곽해룡의 영웅적인 무용과 충렬을 그린 작품이다. 이 계통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에게 초인적인 힘을 부여하여 영웅화하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의 해룡이라는 이름은 그의 아버지 곽승상(郭丞相)이 불전에 시주한 은공으로 남해 중림사(重林寺)의 관음보살이 점지하여 태어났다 하여 지어진 것이다. 곽승상은 원나라 황제 23년에 국가가 어려워졌을 때, 어진 신하를 가려 쓴 공으로 온 나라에 그 이름을 떨쳤으나, 우승상(右丞相) 등 간신의 모함으로 멀리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다.
곽해룡이 15세 때 귀양지의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 적소검(摘小劍)과 갑주(甲胄)를 얻고, 용문산에서 천문과 지리를 배우고 병서를 얻어 병법과 신기묘술을 터득한다. 신황제 즉위 5년 서번(西蕃)이 월지(月支) 가달(加達)과 합세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물리치고 적진에 잡힌 황제를 구한다.
곽해룡이 곽승상의 아들임을 비로소 알게 된 황제는 적몰(籍沒: 죄인의 재산을 모두 거두어들이는 것)했던 가산을 반환하고 아버지 곽승상을 위왕에 봉하고 곽해룡을 충렬후좌승상(忠烈侯左丞相)에 제수하였다.
그러나 황제는 간신들의 모함에 속아 개선한 곽해룡을 기다려 목을 베게 한다. 곽해룡은 곧 설산도의 귀양지에 있는 아버지를 구출하기 위해 찾아갔으나 이미 진번국에 잡혀간 뒤였다.
곽해룡이 반역을 꾀한 진번국을 다시 치고 아버지를 구출하여 황성으로 개선하자, 황제는 전일의 잘못을 뉘우치고 곽해룡을 부마로 삼아 부모를 효봉(孝奉)하게 하였다. 곽승상이 죽은 뒤, 곽해룡은 위왕에 봉해지고 국태민안한 가운데 백년화평을 누린다.
이 작품은 간신과 반적을 퇴치하는 신기한 주인공의 무용과 전기(戰記)의 묘사가 대부분이고, 주인공의 애정과 결혼담은 거의 배제되어 있다. 그리고 입신양명의 유교적 이상과 공명주의를 근간으로 충효사상을 고취함과 동시에 불교적 색채가 매우 강하다는 데에 그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의 출생이 불공에 의한 것이며, 진번국을 칠 때 남해 중림사에서 7일 동안 불공을 드려 도를 깨쳤다는 것, 운수산(雲水山) 용왕당(龍王堂)을 찾아 용제(龍祭)를 지내고 음조(陰助)를 얻은 것, 진번과 접전 때 오백나한과 삼만육십사천왕(三萬六十四天王)을 부렸다는 내용들은 모두 불교사상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음을 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