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14년 임병찬이 독립의군부의 독립운동노선과 조직·활동 등을 구상한 자료집. 독립운동자료집.
개설
내용
또한, 무력에서는 일본에 대해 열세이며 무력을 기르는 데에는 수십년이 걸리고 대단히 많은 재원을 저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문(文 : 智, 仁)으로 대적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결론짓고, 문으로 대적하는 방법으로 장서 투서를 구상하였다.
이를 위해 고종과 순종을 정점으로 하여 중앙에는 주무대신 1인과 원수부(元帥府)를 두고, 8도에 순무총장·참모약장(參謀約長) 각 1인씩, 13부(도청소재지)에 관찰사·도약장(道約長) 각 1인씩, 각 군에는 군수와 군약장 각 1인씩을 두며, 특히 서울과 그 울타리인 4도(四都)에는 5영(五營)을 설치, 사령총장·참모부약장(參謀副約長)을 두도록 하는 독립의군부의 조직을 구상하였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같은 날에 총독부 및 각국 공사관, 각 도 경무부·헌병분견소·순사주재소 등을 직책에 따라 분담하여, ‘독립환권 철병퇴거지의(獨立還權撤兵退去之意)’의 장서를 투서하거나 우송하여 국내외 여론을 환기시키고자 하였다.
이와 함께 ‘대정데모크라시(大正 Democracy)’로 불리는 일본의 정치 상황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상황을 잘 이용하면 우리 나라 독립의 결정적인 계기를 포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당시 일본에서 제기된 조선독립론〔大韓獨立還權論〕에 편승, 오가작통(五家作統)을 실시하고, 민권확립(皇命에 의한 향약의 조직)에 의해 고종을 복위시킴으로써 독립을 이루겠다는 목표가 잘 나타나 있다.
의의와 평가
둘째 양반유생을 중심으로 한 복벽운동(復辟運動)의 구체적 내용을 담고 있다. 셋째 독립의군부 조직의 이원성, 군대 조직과 성균관을 중심으로 한 유생 조직, 향약을 이용한 사회 통제 등 양반 유생을 지배 세력으로 한 봉건사회로의 복귀가 구상되고 있다는 점 등에서 주목되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 「1910년대(年代) 국내(國內)에서의 민족운동(民族運動)」(신재홍, 『한국사』 21, 국사편찬위원회, 1978)
- 「반일의병운동(反日義兵運動)의 역사적전개(歷史的展開)」(강재언, 『조선근대사연구(朝鮮近代史硏究)』,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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