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서비기 ()

목차
조선시대사
문헌
1804년 평민인 재영 · 성세 등이 서울 사대문에 붙여 민심을 동요시킨 문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1804년 평민인 재영 · 성세 등이 서울 사대문에 붙여 민심을 동요시킨 문서.
내용

1804년(순조 4) 9월 평민인 재영(載榮)·성세(性世) 등에 의해 서울의 4대문에 붙여져 크게 민심을 동요시켰다.

이들은 당시 이달우(李達宇)·장의강(張義綱)의 모반사건에 관계된 것으로 보이며, 또 군복으로 변장하여 궁궐에까지 잠입, 이 비기를 투척하기도 하였다.

또, 궁녀를 유인하여 궁중의 물품을 반출하려다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괘서사건(掛書事件)으로서 당시 사회의 불안을 반영하였다.

이 문서는 『순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을 뿐 실물이 전하는 것은 아니다.

참고문헌

『순조실록(純祖實錄)』
집필자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