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4년(순조 4) 9월 평민인 재영(載榮)·성세(性世) 등에 의해 서울의 4대문에 붙여져 크게 민심을 동요시켰다.
이들은 당시 이달우(李達宇)·장의강(張義綱)의 모반사건에 관계된 것으로 보이며, 또 군복으로 변장하여 궁궐에까지 잠입, 이 비기를 투척하기도 하였다.
또, 궁녀를 유인하여 궁중의 물품을 반출하려다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괘서사건(掛書事件)으로서 당시 사회의 불안을 반영하였다.
이 문서는 『순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을 뿐 실물이 전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