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성은 정씨(鄭氏), 속명은 쌍룡(雙龍), 호는 만화(萬化). 강원도 간성 출생. 아버지는 가선대부 진록(振錄)이며, 어머니는 최씨이다. 어머니가 꿈에 쌍룡을 보고 낳았다고 하여 이름을 쌍룡이라 하였다.
10세 이전에 한 승려를 보고 이유 없이 기쁨을 느낀 뒤 절에 다녀와서 승려가 되겠다고 하였다. 부모가 허락하자 금강산건봉사(乾鳳寺)로 출가하여 금현(錦玹)의 제자가 되었다.
그 뒤 태허(太虛)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불경을 공부하였으며, 23세 때인 1872년(고종 9) 왕실의 기원도량이었던 석왕사(釋王寺)의 봉향관(奉香官)으로 임명되어 국가의 태평과 백성의 평안함을 위해서 기도하였다. 그 후, 금강산 건봉사로 돌아와 탱화를 봉안하였고, 1874년(고종 11)에 승통이 되었으며, 1878년에는 전등사(傳燈寺)의 총섭(摠攝)이 되었다.
1878년 큰 화재로 건봉사 3,183칸의 건물이 모두 소실되자, 다시 돌아와 중창불사를 위한 도화주(都化主:불사의 책임자)가 되어 이듬해에 대웅전·관음전 등 1,000여 칸의 건물을 중창하였다. 화엄법회를 열어 널리 후학들을 지도하는 한편, 계속해서 팔상전(八相殿)·극락전 등을 중건하였다.
1901년 조정에서 ‘부종수교 전불심인 대각등계존자(扶宗樹敎傳佛心印大覺登階尊者)’라는 호를 내리고 오대산 적멸보궁(寂滅寶宮)을 수호하도록 하였으며, 팔도승풍규정원장(八道僧風糾正院長)과 관동도교정(關東道敎正)이 되었다. 1908년 건봉사 사적비를 세웠으며, 그 해 9월 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의 회향을 주관하였다.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자 이름 있는 사찰을 순례하다가 1919년 건봉사로 돌아와서 후학들을 지도하였으며, 9월 13일 “진(眞)에 돌아가리라.”고 한 뒤 임종게(臨終偈)를 설하고 서방을 향해 앉아서 입적하였다. 나이 69세, 법랍 57세이다. 화장하여 사리 1과를 얻었으며, 영호 정호(映湖鼎鎬: 박한영)가 행장을 지어서 가선대부 윤희구(尹喜求)의 글을 받아 건봉사에 비를 세웠다.